[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나이는 많지만 혈기는 넘치는 '젊은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경제수준이 높아지고 보건의료 환경이 개선되면서 평균수명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말처럼 이승만이 72세때 대통령이 됐던 1948년에 비해 노인 건강나이는 15~20년쯤 젊어졌다. 평균나이 74.5세 노인들의 좌충우돌 유럽여행기가 인기를 끌었던 tvN의 '꽃보다 할배(이하 꽃할배)'는 새로운 노인상(像)을 보여준다. 팔순을 넘긴 배우 이순재가 세련된 옷차림으로 파리와 스트라스부르그의 번화가를 성큼성큼 걷는 것을 보면 '고령'을 실감할 수 없다. 이들이 연예인이라서 젊어 보이는 걸까. 기자가 보기엔 현역으로 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꽃할배'는 대다수 노인들의 로망이다. 현실 속에선 깃털처럼 가벼워진 지갑, 고독과 소외로 고통을 받고 있는 노인들이 많다. 공자는 60세에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70세에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다르다. 최근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노인들이 많다.

얼마 전 부산에 사는 73세 노인은 텔레비전을 교환해 주지 않는 중고가전제품 매장에 앙심을 품고 새벽에 침입해 불을 질렀다. 최근 청주에선 좌석버스 뒷좌석에서 고교생들이 떠들었다고 60대 노인이 흉기를 꺼내 위협했다가 특수협박죄로 불구속입건됐다. 술에 취한 상태였던 60대는 학생들에게 "시끄럽게 떠들면 가만 안 두겠다"고 말해 승객들에게 불안감을 주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계층은 노인이었다. 61세 이상 범죄자는 2015년(9월 기준) 13만1천337건으로 전년 동기대비 9.1% 증가했다. 같은 시기 모든 계층의 범죄 평균 증가속도(3.2%)의 세 배 수준이다. 노인들도 10대에 못지않게 반항적으로 변하고 있다. 자유기고가인 후지와라 토오미(藤原知美)가 쓴 '폭주노인'은 일본사례지만 우리사회의 씁쓸한 자화상(自畵像)이기도 하다.

가출소녀를 유인해 감금하고 성추행을 해 온 노인, 이불 터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이웃집 부인을 총으로 살해한 노인, 장시간 책을 읽는다고 주의 준 편의점 점원에게 전기톱을 휘두른 노인 등 위험하고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는 불량노인들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후지와라는 노인들이 거칠어 진 것은 시간, 공간, 마음 세가지가 급격한 사회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노인들의 변덕과 폭력은 격변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부적응과 고독한 삶을 알리는 절규라는 것이다.

폭주노인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서로에게 의지가 되지 못하는 가족들, 소외받는 고령자들을 보살피지 않는 사회, 자신의 공간에 갇힌 채 살아가는 현대인등 우리 사회에 잠복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고령화시대에서 '폭주노인'은 국가와 사회가 짊어져야할 심각한 과제다.

노인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게 하려면 정부와 지자체가 빈곤과 고독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역시 일이 중요하다. 역사학자 안토니 로툰은 '남성은 노동을 하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할 일도 없고 사회에서 외면 당하면 꽃할배도 폭주노인이 될 수 있다.

/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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