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5박6일 방한일정을 모두 마치고 지난주 출국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야권인사들이 '반풍(潘風)의 고향', 충북에 들이 닥쳤다.

대권 재수생인 문재인 전 더민주당 대표는 천주교 청주교구청과 속리산 법주사를 방문했다. 킹메이커로 분류되는 김종인 더민주당 대표도 괴산을 다녀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같은시기 충북방문 일정을 잡았다가 구의역 스크린 도어사고 수습을 위해 취소 했다. 아무리 아니라고 손사레를 쳐도 반기문의 동선(動線)이 대권행보이듯 문재인·김종인의 충북행은 반풍을 견제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차기대선 지지율 1위로 올라선 반기문을 본격적으로 의식한 것일까.

약속이나 한 듯이 나타난 이들의 뜬금없는 행보를 충청도민들은 어떻게 해석할까. 그들은 충청권에서 '선물' 하나라도 챙겨 갔을까.

17년 전 대권을 꿈꾸던 노무현 전대통령의 청주방문이 뇌리에 스친다.

그는 당시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야인(野人)이었다. 이를 테면 백의종군한 것이다. 그는 국회의원도 아니었고 특별한 당직도 맡고 있지 않았다. 2000년 총선때 부산에서 민정당 허태열후보에게 고배를 마신 후 절치부심(切齒腐心)하던때였다.

그는 민주당 상임고문이라는 자격으로 지금은 노인병원으로 바뀐 청주관광호텔에서 충북지역 언론사 정치부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홀로 시간에 맞춰 간담회 자리에 나온 그는 함께 참석하기로 했던 안동선의원이 늦는 바람에 한참 동안 별 말없이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왠지 그의 표정엔 원외(院外)의 씁쓸함이 묻어있었지만 기자의 질문엔 특유의 억양으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 당시 충청권에서 노무현의 존재감은 한없이 미약했다. 그를 따르는 정치인들도 별로 없었다.

당시의 노무현에 비하면 문재인과 박원순은 차원이 다르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와 함께 야권의 트로이카로 불릴 만 하다. 이들 중 두 명 또는 한명은 본선무대에서 여권후보와 진검승부를 벌이게 될 것이다. 단기필마(單旗匹馬)로 조용히 온 노무현과 달리 측근들과 함께 '꽃가마'를 타고 온 이들과 악수하려는 사람들의 손에는 힘이 들어갔을 것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오전 청주 청원구 천주교 청주교구청을 방문, 장봉훈 주교와 면담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김용수

충청권은 대선의 전략적 요충지다.

2007년 대선에선 수도권 승부가 당락을 결정지었지만 그 이전과 이후엔 충청권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인 지난 2012년 대권도전이후 전국투어 첫 행선지로 대전과 청주를 선택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는 청주 일신여고를 방문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대선발표 이후 첫 행보라는 상징성이 더해져 주목을 받았다. 문·김이 충북을 방문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철저히 계산된 동선이다. 김종인 대표는 괴산에서 "충북에서 이기는 정당이 꼭 집권한다"고 말했다.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충청권은 더민주당에 비교적 우호적이다. 대전시장, 충북지사, 충남지사를 배출했다.

지난 4.13총선에서도 새누리당에 비해 결코 밀리지 않았다. 더민주당 사람들은 설사 반기문이 나온다 해도 충청권에서 결코 일방적인 쏠림현상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말 그럴까. 충청권 정서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역대 대선에서 진보성향 후보가 충청권에서 이긴 것은 노무현이 유일하다. 그는 역대 대선중 가장 숨 막히는 접전을 벌였던 2002년 대선에서 불과 57만표(2.3%p)차로 이회창을 이겼다. 당시 충청권에서 노무현은 120만3천720표, 이회창은 95만2천94표로 표차는 25만6286표였다. 충남 예산이 고향이라는 이회창이 부산출신인 노무현에게 석패했다.

노무현이 이 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국가균형발전론'이라는 패로 충청권 선거판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그 패에는 '행정수도이전'과 '혁신도시', '기업도시'등 승부수가 될 수 있는 비전으로 가득 찼다. 아직까지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소위 메이저신문의 날 선 비판을 받고 있는 국가균형발전 카드는 충청도민의 마음을 뜨겁게 자극했다.

무엇보다 충청권을 발전시킨 성장 동력이기도 하다. 반기문의 충청권 대망론에 대해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충청과 TK가 뭉쳤을 때 의외의 파괴력을 보일 것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수도권 반응은 차가울 것으로 점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유엔사무총장을 8년간 역임한 반기문의 능력과 경륜 그리고 타고난 운(運)을 우습게보면 안된다.

대권에 도전한다면 국가지도자에 걸 맞는 비전을 제시해야 하지만 선거는 현실이다. 야권의 잠룡들이 반기문을 타넘고 노무현처럼 승기(勝氣)를 잡으려면 충청권에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신발끈을 조이고 충청권을 열심히 돌아다녀도 헛걸음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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