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엊그제(8일) 충북도농업기술원이 배포한 보리수확 사진자료는 초여름의 옛 농촌 들녘 정취를 자아내 모처럼 눈길을 끌었다.

엊그제(8일) 충북도농업기술원이 배포한 보리수확 사진자료는 초여름의 옛 농촌 들녘 정취를 자아내 모처럼 눈길을 끌었다.

낫을 사용해 보리를 베는 장면은 농촌에서 거의 사라진 풍경이기 때문이다.

수확한 보리는 식용맥류와 사료작물 연구사업용인 원원종(품종 고유의 유전적 특성이 변화되지 않도록 유지해 종자증식의 근원이 되는 종자) 이었지만, 사진만큼은 여느 농촌을 연상케 했다.

옛부터 보리수확이 24절기 중 9번째인 망종(芒種·태양의 황경(黃經)이 75°에 달한 때·양력 6월 6일~7일께)에 맞춘 것도 그럴듯 했다. 누렇게 익어가는 6월의 보리는 풍요로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1960년~70년대 무렵만해도 가을걷이 한 곡식이 겨울을 지나 소진될 무렵 농촌에서는 풀죽으로 연명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춘궁기(春窮期)라는 말도 생겼다. '보릿고개' 였다. 양식이 바닥난 이들에게 보리는 궁핍을 해결할 수 있는 주식(主食)이었을 게다.

요즘은 특별한 곡식, 특별한 음식이 된 보리쌀은 쌀과 조, 콩, 기장과 함께 세계 4대 작물의 하나로 이름을 올린 곡물이다. 국내에는 기원전 1세기경 중국에서 전래됐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녔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산상왕 25년(221년) 우박이 내려 콩과 보리 피해가 많았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이랬던 보리는 1965년을 정점으로 급감했다. 당시 국내 재배면적이 6천976㏊에 달해 쌀 재배 면적과 어깨를 견주었다. 그러나 70년대를 거쳐 80년대 이후 격감했다.

엊그제(8일) 충북도농업기술원이 배포한 보리수확 사진자료는 초여름의 옛 농촌 들녘 정취를 자아내 모처럼 눈길을 끌었다.

덕분에 보리쌀은 귀한 몸이 됐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보리쌀 35㎏ 들이 한포 가격(햇품)은 4만5천원에 달한다. 2000년 이후 쌀값을 초월하기 시작한 보리는 웬만한 브랜드쌀보다 비싼 대접을 받는 곡물로 자리 잡았다. 자양강장, 이뇨효과, 혈중 지질 수치 감소, 성인병 예방 등 건강에 도움을 주는 곡물로 인식이 되면서 소비는 더 늘어날 게 뻔 하다.

보리 생산량 역시 다시 상승 커브를 긋기 시작한 모양이다. 충북의 보리 재배면적은 136ha(2015년 기준) 규모. 262 농가에서 584톤을 생산했다.

20년 전인 90년대 중반만해도 요즘 같지는 않았다. 95년 기준 충북 생산량은 207톤, 96년에는 229톤이었다. 이 무렵에는 계약재배를 통해 전량 수매하는 지원책이 있었다. 그러나 쌀값 못지않은 가격대가 형성되면서 양상이 달라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보리가 변화된 세태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요즘은 어떤가.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자식 집에 얹혀 살지 않는다'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며느리 눈치, 자식눈치가 처가살이 못지않게 고단하는 얘기이다.

농촌들녘에서는 드믄 작물이 됐지만, 오랜 역사를 지니다보니 생활문화와는 여전히 궤를 함께하는 것 같다.

/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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