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방 시스템 이대로 가면 위기 닻 오른 지방분권형 개헌] 2. 법률에 갇힌 지자체·지방의회

충북도의회 전경. /중부매일DB

[중부매일 한인섭·김정하 기자] 출범 25년을 맞은 지방의회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자치입법권 제한이다.

1987년 제정 현행 헌법은 지자체는 물론 지방의회의 권한을 '법률'에 가둬 놓았다. 헌법 제117조 제1항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입법권을 국회 권한으로 한정해 놓아 자율적인 지방의회 운영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40조에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회 자치입법권이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헌법 제117조 1항에는 '지방자치단체는 법령 범위 안에서….'라는 내용을 명시한 것이 전부이다. 지자체의 입법권도 문제지만, 지방의회는 아예 헌법에 명시조차 되지 않았다.

지방의회는 이같은 한계 탓에 의원 자질·역량과 별개로 '절름발이 의회'라는 구조가 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전국 시·도 의장협의회는 이같은 구조를 개선하기위한 노력을 부단히 기울였지만,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협의회는 지난 5월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한 지방자치법 개정 촉구' 건의문을 행정자치부에 제출하는 등 제도개선을 거듭 촉구했다.

전국 시·도 의장협의회는 당시 제출한 건의문을 통해 "자치제도가 국민주권을 강화하고, 지역발전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정치제도 이지만, 현행 법을 근거로 시행중인 지방자치 현실은 본래의 이념과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며 "지방자치법 38개 조항 개정과 함께 17개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와 공동 실시한 국민 인식조사에서 국민 73.9%가 법 개정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고, 20대 국회 당선자 300명 중 153명이 개정안에 협조 서약을 했다"며 "중앙정부와 함께 20대 국회가 이같은 방안이 현실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촉구했다.

지방의회 활성화를 위한 인사권 독립과 보좌관제 도입도 여전한 과제이다.

협의회는 2014년 6월 '지방의회 역할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촉구 건의문' 채택해 안전행정부에 제출했다.

협의회는 "집행부 견제와 감독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지역현실에 맞는 자치입법으로 차별화 된 발전을 도모하려면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앙정부는 그러나 지자체와 지방의회 간 상호견제와 균형에 의한 자치 효율성을 도모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지방의회 의장에게 의회 사무직원 임용권 부여, 광역의회 의정 보좌 기능 강화 등을 위해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 정부 입법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광역의회 단위의 인사권 확보를 위한 법개정 노력도 수차례 시도됐다.

부산광역시의회는 2015년 9월 '지방자치단체 행정기구와 정원 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5조(의회 사무기구의 설치기준) 4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건의문을 제출했다. 부산시의회는 제 4항 '해당 자치단체의 규칙으로 정한다. 이 경우 미리 지방의회 의장 의견을 들어야 한다'로 명시된 내용을 '지방의회 규칙으로 정한다'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행자부는 현행 지방자치법을 근거로 "의회 역시 다른 행정기구와 마찬기로 지자체 규칙으로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행자부의 입장은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방의회 입법권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셀 수 밖에 없는 이유인 셈이다. / 한인섭·김정하

'지방자치' 위해선 구조적·법적 장벽 대대적 개혁 필요
김홍환 전국시도지사협 정책센터장 인터뷰

사진 / 중부매일DB

"대한민국에 지방자치는 없습니다"

김홍환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정책센터장이 중부매일 취재진과 만나 꺼낸 첫 마디다.

그는 민선 지자체가 출범한지 20년이 넘었지만 제도적 한계에 부딪혀 '지방자치'라는 말만 존재할 뿐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EAI 분권화센터가 10년 전인 지난 2006년 세계 주요 국가 헌법이 지방자치를 얼마 만큼이나 보장하는 지를 분석한 '중앙-지방정부간 역할분담 지방자치권 보장 조항 비교'에서 대한민국은 28점을 기록했다. 독일 96점, 이탈리아 81점, 대만 72점, 프랑스 67점 등을 획득한 민주주의 국가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김 센터장은 10년전과 비교해 2016년 현재에도 상황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이 말하는 제도적인 문제점은 크게 자치조직권 제한, 지방세가격효과의 부재, 법이 규정한 중앙정부의 과도한 권한 집중 등이다.

먼저 자치조직권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정수(인원)와 실·국 수 등을 법령을 통해 엄격히 제한하다보니 지방정부가 구조변혁 등의 새로운 시도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지방자치법'에서는 자치조직권이 획일적으로 규제돼있다. 심지어 부단체장의 사무분장이라든지 행정기구의 수, 직급 등 세세한 부분까지 법적으로 규정돼있다.

이런 상황에 지역특성에 맞는 탄력적 행정조직운용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은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조직이나 인사 등을 결정하고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 김 센터장은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선 지방세가격효과의 논리를 도입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지방세가격효과는 주민들의 편익을 위해 주민들 스스로 얼만큼의 세금을 내야하는 것인지 직접 결정할 경우 재정의 효율화가 이뤄진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현재는 중앙의 기획재정부가 해마다 모든 사업에 대한 예산을 심의하고 예산을 지방정부에 내려보내는 시스템이다보니, 주민들 스스로 사업을 결정하는 일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예산실링제'이다. 이 제도는 중앙정부가 각 예산항목별로 예산 전체의 비율(%)만 정해주고 그 범위 안에서 지방정부가 자유롭게 예산을 운용하는 것이다. 이같은 제도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는 먼 얘기인 것이다.

법의 규제도 지방자치를 가로막고 있는 큰 벽이다. 헌법 제117조 제1항에서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나와있다. 또 지방자치법 제22조에서는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다만 주민의 권리제한 또는 의무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이 두 조항만 보더라도 겉으로는 지방자치를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법령의 범위 안에서'라는 말과 '법률의 위임'이란 말 때문에 중앙집권을 정당화하고 형식적 지방자치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주민의 결정에 대한 책임과 참여가 이뤄지고 그로 인해 자치단체장이나 의회 의원들의 책임성과 권한이 확대될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선 지방자치의 자치조직권과 예산의 구조적 개편, 전면적이고 실질적인 지방자치 관련 법 개정 등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또 "이런 모든 것이 이뤄진다면 대한민국에 진짜 민주주의가 찾아올 것"이라며 "민주주의의 핵심인 국민, 도민, 주민들이 '지방자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이 첫 단계가 되야한다"고 말했다. / 한인섭·김정하

"분권형 개헌해야 지역실정 맞는 입법 가능"
김양희 충북도의회 의장 인터뷰

사진 / 중부매일DB

"지방 분권형 개헌 움직임은 시대적 상황을 제도 반영한 당연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충북도의회 역시 입법권을 제도화하는 방안과 인사권 독립 등 지방의회의 제모습을 찾을 수 있는 방안에 공감한다."


김양희 충북도의회 의장은 "집행부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기능을 수행하고, 전문성을 확보하려면 의회 제도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입법권을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지역실정에 맞는 조례를 만들어 지역민들의 삶에 보탬을 주는 것이 의회의 핵심적 역할 인데 상위법 범위 내에서 제정해야 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며 "'법령 범위안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로 변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또 "분권형 개헌을 통한 지방자치법 개정과 지방의회 입법권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며 "20대 국회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만큼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과태료 부과를 지방의회가 조례로 규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김 의장은 "현행 지방자치법은 조례에 의한 지방형벌권을 제한해 조례는 유명무실한 자치법률이 됐다"며 "과태료 정도는 지역 사정에 맞게 지방의회가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전문 보좌관제 도입과 사무처 직원에 대한 인사권 독립을 현실적인 대안이자, 최우선적인 제도 개선 과제로 꼽았다.

김 의장은 "사무처 직원에 대한 인사권이 단체장에게 있어 집행부 견제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의회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도민 정서와 여론 등 충분한 검토를 통해 하나씩 개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한인섭·김정하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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