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기덕(56) 감독의 시선은 이전과는 다른 곳을 향해 있다.

데뷔 이후 줄곧 인간 개인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왔던 그는, 2013년 '뫼비우스'를 마친 뒤 우리 사회를 정조준한다. 물론 전작들 안에 사회에 대한 근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 강도의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김 감독 스스로도 "내가 사는 세상이 안전해야 영화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가 일으키는 것들, 이를 테면 전쟁 같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야 인간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스물 두 번째 영화 '그물'도 이런 말의 연장선상에 있다. 영화는 본격적으로 남북 문제를 다룬다. 김 감독이 각본을 쓰고 제작에도 참여한 '풍산개'(2011)와 '붉은 가족'(2013)도 이 주제를 건드리고 있지만, '그물'은 우회하는 법이 없어 더 직접적이다.

28일 오후 '그물'이 언론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 첫 공개됐다. 김 감독은 시사회 후 열린 기자가담회에 참석, "분단 66년째다. 남북이 서로에게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 문제를) 스스로 진단하고, 스스로 해결해보자는 애정을 담았다. 우리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데, 핵심은 우리 자신이다. 그런 문제 의식을 제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북한 어부 '남철우'(류승범)의 이야기다. 고기를 잡으러 나간 어느날, 그는 그물이 보트 스크류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터마저 고장난다. 전재산이던 배를 버릴 수 없던 그는 남한까지 흘러들어오게 된다.

'그물'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불러온 분단 상황이 어떻게 한 개인과 가족을 철저히 파괴해놓는지 공을 들여 묘사해 간다. 그저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 밖에 없는 그를 남과 북은 말 그대로 '조리돌림'한다. 그들의 체제는 다르지만 개인에게 폭력적 존재라는 건 다르지 않고, 그렇게 서서히 남철우와 그의 아내, 딸은 지워져간다.

김 감독은 "슬프고 아픈 영화다. 촬영 내내 울면서 찍었다"고 했다.

그는 "내 영화가 늘 그랬듯이 어떤 사실을 자세히 전달하기보다는 큰 뜻에서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물'이라는 제목도 그렇게 봐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그물'이라는 제목의 의미에 대해, "단순히 말하자면 그물이 국가이고, 물고기가 개인이고 국민"이라고 설명했다.

'그물'은 김 감독의 실제 경험과 반성에서 나온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이고, 이 전쟁에서 총탄 네 발을 몸에 맞고 그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병상에 누워 지내야 했다. 그런 적대감이 김 감독을 해병대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게 만들었다.

김 감독은 "개인적인 분노로는 남북 관계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서서히 하게 됐고, 감독이 돼서는 (남북관계에 대한) 감정이 변했다"고 했다. "이 영화가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이제는 남북이 두 개의 국가가 되고 있지 않은가. 이 땅이 열강들의 대리전인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다. 청소년들도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하기를 바란다." '그물'은 김 감독 영화로는 드물게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남철우'가 명동 한복판에 홀로 놓이는 장면이다. 그를 억지로 전향시키기 위한 남한 측의 작전과 남한의 어떤 것도 눈에 담지 안으려고 눈을 질끈 감은 남철우의 모습이 묘한 슬픔을 자아낸다. 그것은 어쩌면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인지도 모른다.

김 감독은 "이데올로기가 개인에게 던져졌을 때, 개인이 이데올로기의 무대에 서있는 게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많은 욕심을 낸 장면이고, 상황이 여의치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찍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고 동시에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그물'에는 류승범·김영민·이원근·최귀화 등이 출연했다. 다음 달 6일 개봉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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