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혹독한 추위가 몰아친 2009년 1월 12일. 155명의 승객을 태우고 뉴욕 라구아니아공항을 이륙해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으로 향하던 US에어웨이 1549편이 출발 6분만에 철새떼와 충돌했다. 여객기가 두 개의 엔진을 모두 상실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기장 '설리'는 57년 인생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운명적인 선택을 한다. 지난 주말에 관람한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항공재난 영화다. 유난히 개봉영화가 많아 평소 같으면 무엇을 볼 것인가 고민 좀 했겠지만 이번엔 바로 이 영화에 꽂혔다.

평소 12세 관람가는 왠지 '가족영화'같아서 눈이 가지 않지만 이 영화를 굳이 선택한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젊은시절 팬이었던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주연 톰행크스 조합이 마음을 끌었고 철새떼가 항공기에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재난은 벼락같이 찾아온다. 아주 사소한 사건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

'허드슨강의 기적'은 미국사람들에겐 낯 익은 기억이다. 208초간의 짧은 시간에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발생해 맨하튼 고층빌딩과 충돌할뻔 했으나 경력 30년의 노련한 기장 '설리'가 뉴욕 허드슨강으로 비상동체착륙을 시도해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없는 기적 같은 일을 연출해 붙여졌다. 스토리는 간단하지만 이스트우드 감독은 실제 항공기 추락사건의 내막을 입체적으로 조명해 우리시대 진정한 영웅은 과연 누구인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항공기 사고는 자동차사고처럼 흔히 발생하지는 않지만(100만회당 0.7건내외) 한번 났다하면 거의 초대형사고다. 짧고 긴박한 순간에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올바른 판단과 투철한 직업윤리는 수백명의 생명을 좌우한다. 50대로 보이는 여성승무원들은 여객기가 추락하는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침착하게 매뉴얼대로 승객들을 충돌에 대비하도록 했다. 특히 기장 설리는 여객기가 강 위에 불시착한 뒤 모든 승객이 탈출한 뒤에도 물이 차오르는 객실에 남아 단 한사람이라도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맨 마지막에 여객기를 탈출했다. 거동이 불편한 90대 할아버지는 물론 갓난아이까지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던 것은 조종사와 승무원, 그리고 20분 만에 사고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원들이 자기책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몇 년 전에 일어난 재난사건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못했다. 2013년에 발생한 '세월호참사'다. 아마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승객보다 먼저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들, 부실한 구조시스템, 정부의 무능한 위기관리능력, 사람 목숨보다 돈벌이에 치중하는 비윤리적인 기업인등은 대한민국이 왜 선진국 문턱에서 늘 좌절하는지 알려주는 반면교사다.

더 인상적인 것은 155명의 승객을 구해내 하루아침에 영웅대접을 받은 조종사에 대한 청문회다. 기장이 영웅으로 불리고 결과가 좋았다고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청문위원들은 왜 회항을 하지 않고 강에 불시착했는지 과학적인 데이터와 시물레이션까지 동원해 기장을 몰아부쳤다. 하지만 기장은 "지난 42년간 수천 번의 비행을 했지만, 세상이 나를 판단하는 것은 그날 단 한 번, 208초간의 비행이다. 그러니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삶의 어느 순간이 판단 기준이 될지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재난에 조종간을 잡은 리더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 과정을 통해 조종사의 판단력과 책임감을 철저히 검증하는 것은 유사한 사건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영웅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그리고 충실히 하면서 다른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 한다면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점에서 영화 '허드슨강의 기적'은 잘못된 용어다. 155명의 승객들이 모두 구조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기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국가적인 재난이 잇따랐다. 특히 세월호 참사이후 우리사회는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됐다. 재난사고의 늦장대응도 후진국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오죽하면 국가개조론까지 나왔다. 하지만 얼마전 경주 지진사태가 발생했지만 안전대비 시스템에 변한 것은 없다. 재난은 예고가 없다. 정부의 올바르고 신속한 리더십도 소중하다. 하지만 무조건 정부탓하고 남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직업윤리에 충실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참고로 '허드슨강의 기적'은 당시 금융위기로 실의에 빠져있던 미국인들에게 자긍심과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재난의 역설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