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의 진실」 

스탠리 도넌이 1963년에 만든 「샤레이드」라는 영화가 있었다. 일세를 풍미했던 오드리 헵번이 케리 그란트와 호흡을 맞췄고 헨리 맨시니의 선율이 귓전을 간지르는, 로맨스+코미디의 고품격 스릴러였다. 그 「샤레이드」를 기억하거나 좋아한다면 이번에 조나단 드미 감독이 리메이크한 「찰리의 진실」은 맘에 차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오드리 헵번이라는 배우가 워낙 독보적이니, 후발주자로서의 한계가 명백하다. 그나마 「샤레이드」를 아는 요즘 관객이 많지 않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일까.
 하지만 「샤레이드」는 모르지만 「양들의 침묵」「필라델피아」의 명 연출자로 드미 감독을 알고있던 관객들이라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다. 「양들의 침묵」과 같은 완성도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는 조나단 드미 감독이 「찰리의 진실」에 대해 일반 관객이 가질 만한 몇 가지 기대감들을 외면한 데서 연유한다. 그는 자신의 색깔이 완연히 드러나면서 원작과 차별화되는 영화를 의도했던 것이다.
 우선 원작에서 주인공 남녀의 로맨스가 부각됐던 데 비해 탠디 뉴튼-마크 월버그 커플이 만들어내는 러브 스토리의 비중이 약화됐다. 그리고 중심에서 덜어낸 무게가 주변 인물들에게로 이동됐다. 레지나의 남편이 빼돌린 6백만 달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맴도는 인물들, 그리고 그녀를 의심하는 경찰등 보조 캐릭터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와 카메라를 할애하는 것.
 「웰 메이드 영화」에 대한 강박으로부터도 벗어난다. 드미 감독은 한 남자의 죽음에서 시작되는 의문의 사건과, 의도를 알 수 없는 이들의 출몰, 신뢰와 배신의 이중주 등을 포괄하는 스릴러로서의 집중도에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이야기는 종종 곁가지로 새고, 카메라는 엉뚱한 곳에 시선을 빼앗기며, 인물들은 때때로 모호해지는 것이다.
 대신 「찰리의 진실」은 감독의 취향과 기호, 정서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지극히 사적인 영화로 만들어졌다. 가장 명확하게 표현되는 것은 프랑스 누벨바그와, 절친했던 프랑수와 트뤼포에 대한 절절한 애정.「피아니스트를 쏴라」에서 「찰리」로 나왔던 샤를르 아즈나브르가 느닷없이 나와 샹송을 부르고, 장 뤽 고다르의 아내였던 안나 카리나가 탱고클럽에서 열창한다. 또한 60년대 카메라를 들고 파리 시내를 누볐던 그 때 그들처럼 왕가위식 핸드헬드가 파리의 거리와 뒷 골목을 훑는다. 더불어 샹송과 팝, 록, 다양한 월드 뮤직 등의 퍼레이드 또한 록큐멘터리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이었던 드미 자신의 취향을 강하게 반영하는 대목.
 하지만 「Joong-Hun Park」타이틀에 설레는 한국 관객들에게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그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물씬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 일상」은 영화 중반까지 그저 악당 중 하나일 뿐인데도 박중훈을 잡는 카메라는 극적맥락에서 약간 튄다 싶을 만큼 오래 머물고 또 살갑다. 감독이 그를 만난 뒤 극 후반 캐릭터 변화를 결정했다는 사실 또한 의심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마크 월버그와 파리 시내를 누비는 달리기신과, 굵은 빗줄기 속에 펼쳐지는 마지막 시퀀스 등은 드미 감독이 엄청 좋아한다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패러디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지막의 미소와 윙크까지, 보너스도 넉넉하다.
 「찰리의 진실」은 분명 헐리우드 주류 영화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질적이다. 하지만 그 「이질성」은 지구 반바퀴를 날아간 박중훈에게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다소 산만한 「찰리의 진실」이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 이치가 한 몫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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