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근혜 대통령 자료사진. /뉴시스

지난해 관객 1천300만명을 돌파해 역대 3위에 오른 영화 '베테랑'은 가진 자들의 갑질 행태를 정조준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도 볼만 했지만 유독 쫄깃쫄깃한 촌철살인의 명대사가 많았다. "판사는 판결로 죽이고 형사는 조서로 죽이는 거라며" "재미있게 사시네, 근데 죄 짓고는 살지 맙시다." "나한테 이러고도 뒷감당할 수 있겠어요?" "판 뒤집혔다!". 주옥같은 대사다. 하지만 가장 기자의 귀에 꽃힌 대사는 "미안하다고 사과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일을 왜 크게 만드냐?"였다. 재벌2세 조태오(유아인분)는 진심어린 사죄나 사과(謝過) 한마디면 끝날 일을 돈과 힘으로 해결하려다 파멸의 길을 걷는다. 조태오처럼 사과에 인색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한국인처럼 '사과'에 관대한 민족도 흔치않다. 웬만한 허물도 솔직히 용서를 구하고 진정성이 담긴 사과 또는 사죄(謝罪) 한마디로 넘어간다. 그래서 나온 말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과도, 사죄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사과하고 싶어도 기술이 모자라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심리학적으로 사과는 실천하기 어려운 행위라는 것이다. 특히 사죄는 굴복이나 체면을 구기는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자칫하면 사죄를 했다가 법적 책임을 지게되는 상황에 몰릴 것을 우려해 애매하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지난 10월25일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사과가 그랬다. '맹탕 사죄'라는 말이 나올만큼 거짓말과 변명으로 점철됐다. 이후 박 대통령에 대한 민심은 급전직하했다.

'공개 사과의 기술'의 저자 에드윈 L. 바티스텔라 미국 서던오리건대 교수는 언어학에 사회학, 심리학, 문화적 배경 등을 종합해 '사과론'을 펼쳤다. 그는 '사과도 기술'이라고 말한다. 사과는 단순한 기교 수준을 뛰어넘는 예술에 가까운 기술이란 것이다. 공개 사과를 제대로 하면 사과한 사람이나 기관의 이미지를 끌어올려 주는 전화위복 효과를 내지만, 자칫하면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불쏘시개 구실을 한다. '변명 같다' '면피용이다' '연기 같다' 는 느낌을 준다면 듣는 사람들은 더 분노할 수 밖에 없다.

바티스텔라는 완전한 사과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사과하는 이가 수치심과 유감을 표현하고, 특정한 행동 규칙의 위반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외면이나 배척에 공감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또한 잘못된 행위를 명시적으로 부정하고, 그 행위와 이전의 자신을 비판하며 앞으로 바른 행동을 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그리고 속죄하고 배상을 제시해야 한다.' 사과를 잘한다는 것은 말을 멋지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말로만 끝나는 사과는 공허하다. 사과는 실천이 뒤따를 때 무게감을 갖는다.

보름전 대국민 사과를 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엔 눈물을 글썽이며 9분간 사죄를 했지만 민심의 공감지수는 낮았다. 박 대통령이 사죄와 참회로 민심을 움직이려면 방법은 하나다. 검찰수사에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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