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6공 황태자', '소통령', '홍삼트리오', '봉하대군', '만사형통(萬事兄通)'. 때만 되면 찾아오는 '각설이타령'의 주인공처럼 역대정권 말기에 드러나는 '비선실세 파문'과 '권력형 비리'를 빗댄 신조어다.

역대 대통령 모두 시작은 창대(昌大)했지만 임기말년엔 마치 가을비에 젖은 낙엽처럼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며 초라하고 미약(微弱)하게 청와대를 떠났다. '암세포'가 서서히 퍼지면서 자각증세를 보이면 빨리 수술해 종양을 제거해야 하지만 권력의 단맛에 취하면 여론에 귀 닫고 눈감는다. 시중에 떠도는 소문은 한낱 '찌라시'로 무시해 버린다. 그러다 레임덕이 오는 정권말기엔 악성종양이 온 몸에 퍼져 세상에 다 드러난다. 5년마다 '제왕적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는 과정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한국 정치에서 비선실세는 늘 존재했다는 사실과 정권의 몰락을 재촉하고 관련자들은 항상 비극적인 파국을 맞았다는 교훈을 주지만 그 교훈은 정권이 바뀌면 까맣게 잊는다.

차기정권은 어떨까. 기대 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아이들은 독재시절 나 때문에 혹독한 시련을 겪어 부정과 비리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아들 셋 모두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 등 각종 게이트'의 몸통이었다. 이들은 '100% 해결사'라는 말도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부정부패는 패가망신 한다"며 도덕성을 강조했지만 가족의 비리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하 박근혜)은 많은 국민들이 '비선실세'에서 자유로울 것으로 생각했다. 독신에다 형제들과 의절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 역시 이런 점을 부각시켰다. 그는 2012년 12월 마지막 대선 유세에서 "저는 돌봐야 할 가족도, 재산을 물려줄 자식도 없다. 오로지 국민이 저의 가족이고, 국민의 행복만이 제가 정치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거짓말이다. 그에겐 '최태민 일가'라는 가족이 있었다. 아마 이 연설문도 최순실이 손 봤을 것이다. 박근혜는 결과적으로 그들의 행복을 위해 정치를 했다.

박근혜는 임기중 몇 차례 '비선실세'를 차단하고 국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국정을 쇄신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었지만 기회를 놓쳤다. 정윤회와 문고리 삼인방 전횡에 대한 여론의 거센 압박도 외면했다. 2014년 정윤회 문건 유출 당시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었다. 한번 거짓말은 터 큰 거짓말을 낳았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규정했다. 참 나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도 철저히 속았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실체를 얼마나 알까. 대권을 꿈꾸는 잠룡(潛龍)은 많지만 그들의 이미지는 피상적이다. 주변사람들도 겪어보지 않으면 한 치의 마음속도 모르는데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다. 20여년전 변호사 출신 유력 대권후보는 이미지가 참신했다.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언행으로 새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김동길 전 교수는 한때 같은 정당에 몸담았던 그에 대해 '양의 탈을 쓴 바바리코트 입은 늑대'라고 혹평했다. 이중인격자라는 얘기다. 이런 사람이 대권을 잡으면 국민들은 당연히 상처를 받을 것이다.

차기 대선 후보들도 오십보백보다. 겪어보지 못하면 그들이 어떤 인물인지 모른다. 대한민국은 지금 국정이 마비됐다. 국민들로 부터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이럴 때 일수록 정치인들은 역량과 지혜를 모아 국민 불안을 잠재우고 위기극복에 나서야 하지만 대권을 향해 브레이크없는 질주로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선거를 하기 전부터 대통령이 된 것처럼 착각하는 후보도 있다. 최악의 국정공백에 치안질서를 걱정해야 할 시장이 거리에서 대통령 퇴진운동에 나서고 있다. 역대 정권의 게이트에 관련된 정치인들이 혼자 깨끗한 척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다. 나라의 안위(安危)보다는 권력을 탐하는데 혈안이 됐다. 국민은 박근혜에게 돌을 던져도 정치인들은 안된다. 무능하거나 사악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잘못 뽑아 국가가 혼란스러운 것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다. 미국도 70년대 닉슨 같은 인물이 재선됐고 클린턴과 트럼프 같은 문제투성이 후보가 백악관을 노리고 있다. 초강대국이라고 해서 인격과 능력을 고루 갖춘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헌법질서를 무너뜨렸다면 바로 권좌에서 물러난다. 그게 정치문화다. 대통령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기도 하다. 권력구조도 손을 봐야 하지만 핵심은 사람이다. 차기 대선 후보군들의 신상검증 시스템은 더욱 혹독하게 작동돼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말과 행동을 지금부터라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박근혜가 반면교사(反面敎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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