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왼쪽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권력형 비리를 지칭하는 모든 '게이트'의 원조인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1974년 8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자진사퇴했다. 하지만 리처드 닉슨은 만약 탄핵되지 않았다면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지 않았을 사람이다. 그는 벼랑 끝에서 특별검사까지 전격 해임할 만큼 강수를 두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를 직접 지시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는 않자 백악관에서 벼텼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탈세와 불법자금 수수 등 닉슨의 비리혐의가 드러나면서 미국 하원은 탄핵을 결의했다. 탄핵이 확정적임을 알게 된 닉슨은 한 달 만에 사임했다. 이후 제럴드 포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1년여간 지속된 국가적인 혼란은 막을 내렸다. 닉슨은 탄핵사태의 와중에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를 붙들고 울음을 터뜨리며 "이해할 수가 없어.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지?"라며 부르짖곤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탄핵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2004년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측근비리로 곤혹을 치르고 있던 노무현 전대통령이다. 그해 3월 9일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공동으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한이후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탄핵저지를 위한 농성전으로 맞섰다. 하지만 3일만에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 등 야당 의원들 가운데 193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기습적으로 가결됐다. 하지만 야당에 대한 전국민적인 질타가 쏟아졌고, 전국 각지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잇따랐다.

이 때문에 그해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하는 지지를 받았지만 야당은 초토화됐다. 노 대통령에겐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그해 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 기각 결정을 내려 탄핵사태는 두 달 만에 종결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재임시 탄핵의 위기를 겪었다.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방송이 나간이후 SNS를 타고 '뇌송송 구멍탁', '미친소' 등 광우병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비난 글이 쏟아지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는 전 국민의 이슈로 등장했다. 특히 2008년 6월 10일 6.10 민주화 항쟁 21주년을 맞아 서울 도심에서 100만 촛불 대행진이 계획되자 경찰이 시위대의 청와대 난입과 전경과의 충돌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도심 곳곳에 소위 명박산성(明博山城)을 설치하기도 했다. 당시 미디어다음 아고라에서 수십만명이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서명서에 사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괴담으로 인한 집단적 광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소멸됐다.

이번엔 박근혜 대통령이다. 초유의 국정마비 사태를 가져온 박근혜·최순실게이트때문에 탄핵은 기정사실이 됐다. 정치권 분위기로 볼 때 탄핵소추안 발의는 시기만 남았다. 국정혼란을 감안하면 본인 스스로 퇴진하는 것이 정국을 안정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지만 박 대통령은 임기를 채우겠다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것 같다. 늘 콤플렉스와 '적들의 음모'에 대한 망상에 시달렸다는 닉슨을 보는듯 하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엄청난 잘못을 온 국민은 다 아는데 본인만 모르는 척 버틸 리가 없다. /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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