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우아영 과학칼럼니스트

얼핏 생각하기에 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질병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식중독이지요. 보통 덥고 습한 여름에 상한 음식을 먹고 걸리는 게 식중독인데, 겨울 식중독은 굴이나 조개와 같은 어패류에 있는 노로바이러스가 주원인입니다. 그런데 이런 겨울 식중독의 대명사인 노로바이러스가 숙주, 그러니까 감염된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2014년 11월 19일 학술지 '네이처'에 이목을 끄는 논문 한 편이 실렸습니다. '장내 바이러스는 공생 박테리아의 유익한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제목입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이러스가 장내세균처럼 우리 몸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장내세균은 장 속에 살면서 우리 몸의 면역기능을 높여주고 염증반응을 완화시켜주거나 유익한 물질을 분비합니다. 그런데 질병을 일으키는 줄만 알았던 바이러스가 이처럼 좋은 역할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는 미국 뉴욕대 의대 켄 캐드웰 교수팀이 주도했는데요, 연구팀은 멸균된 환경에서 실험쥐를 사육해 '무균 쥐'를 만들었습니다. 무균 쥐는 특정 면역세포를 충분히 만들지 못하고 영양분을 흡수하는 작은창자의 융모가 비정상적으로 얇아서 몸도 삐쩍 마르고 질병에 취약합니다.

연구팀은 이 무균 쥐에게 '쥐 노로바이러스'를 투여했습니다. 쥐 노로바이러스에는 구토와 설사를 일으키는 종류와, 증상 없이 감염 상태를 지속하는 종류가 있는데, 연구팀이 투여한 건 두 번째 종류였습니다. 그 결과, 쥐의 융모가 정상 수준으로 두꺼워지고 면역세포 수치가 다시 올라갔고 위장관 손상도 회복됐습니다.

연구팀은 "쥐 노로바이러스가 인터페론-1이라는 물질과 관련된 면역반응을 촉진하는 것 같다"고 추정했습니다. 인터페론-1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가 면역계의 명령을 받아 바이러스에 대응하려고 만들어내는 단백질입니다.

사실 이 같은 연구가 처음은 아닙니다. 타액 속 바이러스가 해로운 세균을 물리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기생벌은 애벌레 몸속에 알을 낳는데, 기생벌이 옮기는 바이러스가 벌의 알을 보호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숙주의 몸에 숨어 조용히 살거나 심지어 도움을 주는 바이러스를 '지속감염' 바이러스라고 부릅니다.

바이러스의 '감염'에는 크게 급성감염과 지속감염이 있습니다. 급성감염 바이러스에 당하면 바로 질병에 걸립니다. 2014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에볼라 바이러스가 대표적입니다.

반면 지속감염은 휴전 상태입니다. 바이러스가 늘어나는 개체 수를 최대한 줄여 숙주에게 거의 피해를 주지 않고 감염 상태를 유지합니다. DNA 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휴전을 좋아합니다. 이런 바이러스 일부는 숙주의 진화 과정에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속하는 레트로바이러스가 대표적입니다.

최근에는 전쟁만 좋아하는 줄 알았던 RNA 바이러스 중에도 휴전 상태, 즉 지속감염을 하는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서두에 언급한 쥐 노로바이러스도 지속감염을 좋아하는 RNA 바이러스입니다.

정 교수는 "지구에는 어떤 바이러스가 있을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아직 제대로 모르고, 바이러스 세계가 얼마나 넓을지조차 추정하기 어렵다"며 "앞으로는 바이러스 입장에서 본 연구 결과가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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