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선배 충북도의원

자료사진 / 뉴시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짧은 대선행보에는 많은 아쉬움이 배어있다. 그의 좌절은 본인과 지지자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안타까움이다. 한편으로는 앞 다퉈 신기루를 쫒다가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민망한 상황이기도 하다. 사회병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사회에 드리워진 허상의 깊이를 절감케 하는 사건으로 꼽아도 될 듯하다. 필자는 반 전 총장이 대권후보로 회자되기 시작한 지난해 11월초'아! 이원종, 그리고 반기문'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반 총장의 대선출마가 바람직하지 못하고 성공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원종 전 지사가 막판에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들어갔다가 명예를 훼손한 것과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으로 우려했다. 필자뿐만 아니라 반 총장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명예가 잘 지켜져 후대에도'영원한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으로 남기를 바랐다.

그리고 굳이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다. 전임 총장으로서 인류의 보편 가치인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이와 난민을 돕는 일,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일,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기반 조성을 위해 주변 강대국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일, 우리사회의 불평등과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 등 수없이 많다. 그는 짧은 대선행보에서 별다른 준비 없이 유엔사무총장이라는 브랜드와 이미지만 믿고 좌충우돌했음을 보여줬다. 자신이 추구하는 공동체적 가치와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고 공감을 얻으려하기 보다는 대부분을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했다. 정치인으로써 거쳐야 할 냉혹한 검증과정도 제대로 극복해 내지 못했다.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던 어설프고 짧은 정치여정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의 대선행보는 정치 불신을 크게 키우는 부정적인 역할도 했다. 충북의 몇몇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반 총장을 만나'공산당만 아니면 따르겠다'고 충성맹세를 해 비판을 받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설 자리가 좁아진 새누리당과 여권성향의 인사들에게 반 총장의 등장은 그야말로 구세주였다. '충청대망론'의 유력후보인 그에게 쇠잔해진 정치생명의 부활을 의탁했다. 그의 정당 선택이나 정치 지향점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자신을 선택한 유권자들도 안중에 없었다. 박근혜 정권과 공동운명체인 여당 정치인들은 반 총장을 자신들의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매개체로 삼은 것이다. 반 총장이 불출마를 선언하니까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돌아가려고 한다.

장선배 충북도의원

자치단체들의 과도한 반기문 마케팅은 또 어떤가. 음성군과 충주시는 반기문 브랜드를 선점하려고 다양한 사업을 경쟁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반기문 생가의 도를 넘어선 홍보는 우상화 논란마저 불러일으켰다. 무엇이든 과한 것이 부족함만 못하다. 반기문 마케팅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진행돼야 할 것이다. 반 전 총장의 설익은 대권도전과 포기는 자신의 명예 훼손을 비롯해 많은 것을 잃게 했다. 이제 그의 짧은 부침을 찬찬히 되돌아보며 성찰할 것은 성찰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충북이,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그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대권도전에는 실패했지만, 그가 갖고 있는 많은 소중한 자산은 앞으로 국가와 사회, 인류를 위해 가치 있게 사용돼야 한다. 그 기회를 준비하는 첫 단추가 지난 일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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