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 정구철 충북북부본부장겸 충주주재

중부매일 DB

지난해 9월 28일 시행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이 우리사회 전반을 변화시키고 있다. 김영란법은 대한민국 사회를 법 시행 이전과 이후로 구분지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미쳤지만 상대적으로 이에 따른 폐해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예전에는 공공기관의 인사철만 되면 승진한 공직자들에게 축하화분이 줄을 이어 답지했지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 거의 눈에 띄지 않아 썰렁한 분위기다. 횟집이나 한정식집 등 고급음식점도 김영란법 시행으로 직격탄을 맞아 개점휴업 상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설 명절 기간 동안 대형마트 4사를 대상으로 농식품 판매동향을 조사한 결과, 설 명절 이전 4주일 동안 농산물 등 신선식품 선물세트의 매출액이 963억7천900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천237억1천만 원에 비해 22.1%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농축산물의 소비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농업계의 우려가 사실로 나타난 것이다. 농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표한 김영란법 시행 이후인 '2016년 4·4분기 외식산업 경기전망지수'에 따르면 10~12월 매출액 지수는 74.27, 고객수 지수는 74.29로 조사됐다.

이는 김영란법 시행 이전 매출을 100으로 가정한 것이어서 법 시행 이후 매출액과 고객이 현저히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농민 뿐 아니라 외식업체와 화훼업자 등 영세자영업자들도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김영란법 후폭풍이 현실화되면서 각 자치단체도 지역경제 위축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조길형 충주시장은 지난해 11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 법에 대한 과도한 오해가 골목상권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며 "부정한 청탁을 하지말라는 법이 함께 밥도 먹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를 불러일으켜 정상적인 소비를 막고있다"고 주장했다.

최용수 충주시의회 의원도 지난 7일 폐회한 임시회 5분발언을 통해 김영란법과 같은 법 시행령의 신속한 개정을 촉구했다. 그는 "무너져가는 내수경제를 외면하는 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직무 유기"라며 "화훼업·요식업·어업·축산업 등의 애환을 풀어줘야 한다"고 법 개정의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충주에서 이른바 잘 나가는 횟집 서너 군데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심각한 영업부진으로 이미 업종을 변경했다. 일부 한우식당은 자구책 마련을 위해 음식까지 할인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이 지역경제 위축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농민들이나 자영업자들은 김영란법 가운데서도 특히 '3·5·10'(음식물 접대·선물·경조사비 상한선)으로 통하는 기준에 큰 불만을 갖고있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사태에서 보듯이 수억 원에서 수백억 원씩 주고받는 사람들에게 과연 3·5·10이라는 김영란법의 상한기준이 어느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지 의문이다. 혹시 그들에게 비웃음거리 정도는 아닐지 모르겠다. 거액의 뇌물을 주고받는 것은 김영란법 시행 이전에도 처벌대상이었다. 다만 이를 교묘히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법을 무색케했을 뿐이다.

정구철 충주주재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막기 위한 김영란법이 윗분(?)들에게는 무의미하고 하위 공직자나 영세서민들만 멍들게 하는 법이어서는 안된다. 국회가 김영란법 개정법안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공직자 등의 비리를 규제하기 위해 강화된 김영란법이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로 인한 선의의 피해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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