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정하 정치부 기자

우리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AI(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된 2천300만마리에 달하는 닭을 땅에 묻었고 묻고 있다. '2천300만'이라는 숫자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절반에 해당한다. 인간으로 치면 대학살이다. 방역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인간들의 실수로 이만큼의 닭을 땅에 매장했다고 가슴아파했을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오히려 우리는 다른 것에 분노했다. 이타적 삶, 생명존중, 환경보호, 지구와 환경을 지키는 생태적 생활방식. AI 앞에서 허울 좋은 단어들은 그저 단어들에 불과했다. 당시 닭들이 매장되는 것을 보며 대부분 우리들의 머릿 속에는 한가지 생각 밖에 없었다.

'달걀 값이 비싸지고 있다', '닭을 먹어도 괜찮나?'. 한창 AI가 진행될 때 언론은 주부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현 상황을 진단했다. "계란 한판에 만원이 넘는다니 말도 안되요", "AI 때문에 식단을 바꿀 판이에요", "이제는 계란이 아니고 금란이네요" 등등. 그러면서 치킨 가게들이 울상을 짓고 있고, 제빵업체들이 달걀구하기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뉴스들이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우리는 또 다시 가축을 묻고 있다. 지난 5일 보은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전국적으로 약 1천200여마리의 소가 매장됐다. 이제 우리의 머릿속에는 또다시 몇가지 예측과 생각이 떠오르고 있다. '우유 값이 비싸지겠구나', '소고기를 먹어도 괜찮으려나'. 그러나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생명을 존중해왔다. 화랑도의 세속오계의 마지막 계율인 살생유택(殺生有擇)은 자연의 미물까지고 분별없이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살생하는 것을 금하고 공명 정대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게다가 소와 닭은 예로부터 인간을 돕는 동물로 '가축(家畜)'이라고 불렸다. 단군신화에서도 인류의 기원을 동물에서 찾기도 한다.

김정하 정치부 기자

더욱 거슬러 올라가 인류가 처음으로 정착생활을 하게 된 계기도 이 가축들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농경사회 이전에는 유목생활을 전전하던 인류가 동물의 가축화와 농경법을 습득하게 되면서 인류는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축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어왔다. 우리는 AI나 구제역이 발생하면 계란값, 우유값, 닭고기값을 걱정하기 전에 먼저 '인간답게' 동물에 대해 방역을 잘 하지 못한 죄로 미안한 마음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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