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 교정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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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계에 엔트로피(entropy)라는 개념이 있다. 엔트로피는 흔히 물리계의 무질서한 정도를 일컬는다. 자연 현상은 언제나 물질계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무질서해지는 방향으로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를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혹은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한다. 엔트로피는 생소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예를들어 잉크를 맑은 물위에 떨어뜨리면 잉크 입자는 물분자들과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마구 뒤섞여 무질서하게 되는데 이것이 엔트로피 증가 모습이라고 한다.

즉, 시간이 흐를수록 잉크 입자는 물분자에 섞이면서 점점 무질서하게 되어 엔트로피는 증가될 뿐 잉크 분자가 스스로 질서를 찾아 물속에 퍼져있던 잉크 분자만 따로 모이는 질서정연한 상태로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물론 고립되지 않은 계에서 엔트로피가 감소되는 사건, 즉 무질서의 정도가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그때는 반드시 외부에서 그 계에 물리적인 '일(work)'을 계속 해줘야한다고 한다. 이를 편하게 설명하자면 책이나 학용품으로 어지렵혀져 있는 책상이 질서를 찾기 위해서는 정리라는 '일'이 필요하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고백하건대 필자가 생소한 물리학 개념을 들먹이면서 길게 사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실은 필자가 겪었던 난감한 상황에 대한 구차한(?) 변명을 하기 위함이다. 물리학 이론이 사람의 지적영역에 그대로 적용되는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 혹은 지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엔트로피가 증가하여 무질서하게 흐트러져서 아무리 떠올리려 해보아도 기억나지 않게 되어 버린다는 점에서 인간의 정신작용에도 열역학 제2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

필자의 머릿속에 잘 정리되어 있었던 법학 이론들, 주요 판례, 법조항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질서해 진다. 게다가 나이를 먹다 보니 그 기억이 무질서해지는 속도에 가속이 붙어 요즘에는 절친했던 친구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가끔 있으니, 어쩌면 기억에도 열역학 제2법칙이 적용됨은 물론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빨리 무질서해진다는 새로운 열역학 법칙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조차 한다.

필자는 요즘 모 정부부처 공무원 연수원에서 초급간부공무원들을 상대로 형사소송절차실무 강의를 하고 있다. 필자가 강의할 때 가끔 평소 기계처럼 외웠던 부분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필자는 수강생에게 묻기도 하는데 이제 막 수험공부를 했던 분들인지라 정확하게 정답을 말해주곤 한다. 그때마다 지식의 엔트로피 증가와 기억의 반감기 감소에 관한 필자의 생각은 확신이 된다. 이제 막 고난도의 형사소송법 시험에서 거의 만점을 받은 간부 공무원들의 소송법 관련 지식 엔트로피는 거의 '0'에 가깝고, 필자 지식의 엔트로피는 시간이 흘러 이미 크게 증가해 있는 상태인 것은 피할 수 없는 자연 법칙이 적용된 결과다. 물론 사람의 지식은 물리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영역은 아님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지식의 엔트로피가 증가하여 지식이 줄어들더라도 절대적인 부존재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쌓였던 흔적이 켜켜이 모여 지혜라는 보다 큰 지적 자산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깊이를 동반한 지혜는 철학없는 많은 지식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결과물을 도출해야 하는 변호사에게 법지식은 지혜만큼 중요하다. 언급했다시피 물질계에서 엔트로피를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질서를 찾기 위한 일을 하여야 하듯 지적영역에서 지식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꾸준한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설령 잊혀지더라도 지혜로 변할 지식을 유지하고 보충하기 위해 필자가 할애할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을 투입하여 끊임없이 공부를 하여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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