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 클립아트코리아

한국전쟁이후 인구폭발의 주역이었던 베이비부머(1954~1963)세대가 2010년부터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압축성장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지만 은퇴이후의 삶은 팍팍하다. 우리나라 베이비부머의 금융자산은 주변국가의 비숫한 세대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90년대 중반 IMF사태와 2천년대 금융위기등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산업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으로 '사오정·오륙도(45세 정년, 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놈)'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을 탄지 벌써 한참 지났다. 평균수명이 길어졌지만 정년은 갈수록 짧아지면서 나온 시대상에 대한 자조적인 표현이다. 그나마 국민연금은 서민들에게 작은 희망을 주었지만 수급연령을 늦추자는 방안이 제기돼 '소득절벽'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산하 국민연금연구원은 최근 급격한 고령화 추세를 반영해 국민연금 수급 연령을 만 65세에서 만 67세로 더 늦추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고령화 속에 연금재정이 악화하면서 연금 수급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했고, 게다가 일부 국가는 70세로 올리거나 올리는 것을 검토 중"이라며 "국민연금 수령 나이도 67세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과 기대여명의 변화를 고려해 수급개시연령을 늦춰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는 은퇴자의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적인 방안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노동시장 유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은퇴준비세대의 금융자산도 턱없이 적다. 독일의 경우 2003년 하르츠 법을 제정해 52세 이상에 대해 자유로운 근로 계약 체결이 가능도록 해 고령자의 취업 지원을 용이하도록 했고 실업자의 자영업 창업을 지원하고 장기 실업자를 관리하는 '잡센터'를 설립해 '젊은노인'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조기퇴직해도 인생2막을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하다. 또 국내 은퇴준비 세대의 1인당 금융자산은 일본과 대만에 크게 뒤진다. 2020년 이후 국내 은퇴세대는 재취업이나 실물자산 처분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때 자산가격의 급변동은 커다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연금개혁조치로 연금수급 나이가 늦춰져 올 수급연령은 만 61세, 1969년 이후 출생자의 연금수급개시 연령은 만 65세다. 여기에서 또 늦춰진다면 '소득절벽'으로 인해 집까지 팔아야 생활난을 벗어 날 수 있다. 보험개발원이 은퇴를 준비 중인 126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은퇴부부 적정생활비는 월 269만원이었다. 하지만 설문대상자중 이정도 수입이 있는 사람은 7.9%에 불과했다. 최저생활비 기준인 월 196만원으로 낮춰도 20% 미만이었다. 대다수 은퇴자들은 국민연금을 최대치로 받아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대부분 가계부채를 떠안고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을 외면하고 국민연금 수급연령을 늦추겠다고 하는 것은 은퇴가정을 빈곤층으로 내몰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