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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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28일 소위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 시행된지 5개월이 지났다. 우리사회의 접대문화와 부정부패의 악습을 뿌리 뽑기 위해 제정 당시부터 사회적인 논란과 쟁점이 됐던 청탁금지법 시행이후 과연 대한민국은 얼마나 투명해졌을까. 물론 국민들의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 있는 삶'이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시행이후 설문조사를 통한 직장인들의 접대문화와 소비행태를 보면 우리사회가 개혁됐다고 보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까지 뇌물죄가 적용된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으로 발전하면서 청탁금지법이 당초 취지와 달리 희석(稀釋)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청탁금지법이후 대표적으로 달라진 것은 접대 횟수가 크게 줄고 식사단가도 대폭 낮아졌다는 점이다. 또 민관에서 정기인사 때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선물도 대폭 줄었다. 반면 가족과의 식사 기회는 늘어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인 지난해 10월 소비행태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견간부, 공직자, 자영업자등 3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식사 접대시 비용이 '3만원 미만'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4.5%였다. 법 시행 전 29.4%이었던 비중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법 시행 이후 접대가 '줄었다'고 응답한 직장인이 73.6%에 달한 반면 법 시행 이후 식사 접대 횟수가 '늘었다'는 응답자는 0.3%에 그쳐 법 시행의 효과가 크다고 풀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직장인들이 접대가 줄어들다보니 가족과의 식사자리는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이처럼 기업과 기관에서 식사접대 빈도와 금액 감소는 청탁금지법 취지에 부합한다. 선물도 마찬가지다. 실례로 최근 충북교육청의 복무 점검 결과 정기인사이후 교장실의 축하 난은 대부분 5∼6개에 불과했다. 과거 수십 개의 난이 집무실을 가득 메웠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뿐만 아니라 가격이 5만원을 넘어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것은 없었다. 이처럼 기업체와 기관 입장에서 접대와 선물비용의 절감으로 경영 개선과 가정생활의 확대라는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외식산업에 찬바람이 불면서 자영업자들이 위축되고 농축산업계와 화훼업계도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인 지원과 개선점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우리사회에 만연한 비리와 부패사슬이 청산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선뜻 대답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설문조사에서도 아직도 25%는 접대비 5만원을 넘겼다고 응답했다. 사회 일각에선 청탁금지법을 있으나마나한 법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최순실·엘시티비리에서 드러났듯이 청와대와 고위층의 부패로 많은 국민들이 혼란을 느끼고 있다. 권력 상층부에선 수억, 수십억원의 뇌물이 오가는데 3만원짜리 선물과 5만원짜리 밥값으로 처벌을 받는다면 수긍할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회정의에도 맞지 않는다. 청탁금지법이 뿌리를 내리고 사회투명성과 청렴도를 높이려면 윗물부터 맑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권력자도 비리혐의가 드러난다면 반드시 단죄하고 패가망신 당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일깨워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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