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우수가 지척이건만 절기로는 아직 정월을 넘어서지못하고 있다. 그제 저녁 정월 대보름. 달집을 태우며 망우리를 돌리는 잊혀진 민속행사가 이 지역 '풍물굿패 몰개´주최로 열렸다.
 묵은 논 다랭이 복판에 태워질 달집이 고추 세워지더니 이윽고 해가 떨어지자 호기심 어린 동심의 눈망울들이 가득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자의 신호가 떨어졌다.
 당겨진 불씨는 처음엔 탁탁거리며 작은 불똥을 튀기기 시작하다가 순식간에 커다란 불길이 되어 높게 치솟으며 장관을 이뤘다.
 논빼미에 늘어선 모두는 함성과 함께 손뼉을 치고, 더러는 셔터를 연방 누르는 등 갑자기 주위가 어수선해졌다. 어쨌든 액운을 떨쳐버리고 새 기운으로 농삿일을 시작하려는 우리 조상들의 전래 풍습이었으리라.
 타 오르는 불빛을 지켜보다 얼핏 생각나는 얘기 하나가 있었다.
 어느 이름 모를 고도(孤島)의 여인들은 밤 하늘을 가로지르며 떨어지는 별똥별이 그 꼬리를 다 감추기 전에 한가지 소원을 빌면 언젠가 꼭 이뤄진다는 속설을 믿고 한결같이 고기잡이 나간 남편과 자식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 말이다.
 뉘 찾아올 이, 돌봐줄 이 없었던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늘 바깥 소식이 그리웠던 보릿고개 60년대. 그 시절 부모님은 맨 몸으로 고향을 떠나와 이곳 충북 송곳 모로박을 땅 하나없는 산골에 정착한 무지렁이었다.
 어머님은 이른 아침 미루나무 위 까치가 까작대기만 해도 연신 누이를 향해 "얘, 오늘 반가운 손님이 오시려나 보다"하셨고, 웃방 시렁에 거미가 줄을 쳐도 "얘, 그냥 두거라. 돈 들어 올 소식인가 보다" 하시며 빈함 중에도 스스로 위안을 찾으시며 생을 달관하셨던 것 같다.
 매년 정월 보름날 저녁이면 자식 숫자대로 들기름 종지에 심지를 길게 늘여 놓으시고 밤 이슥하도록 자식들 무병장수를 기원하셨는 데 불효막심하게도 어머님의 그런 정성에도 불구하고 오십견 탓일까? 아픈 곳이 더 많으니......
 아무래도 타오르는 달집을 보며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고 오지 않은 것을 올 한해도 두고두고 후회해야 할 것 같다. / 충주중학교 행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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