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왼쪽)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오른쪽)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

검찰의 대통령 수사는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압권 이었다. 1995년 10월 19일 국회 박계동 의원의 '노태우 4천억원 비자금' 폭로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전두환은 "정치적 필요에 의한 수사"라며 반발했다. 그는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연희동 사저 앞 '골목성명'을 발표(12월 2일)한다. 전두환은 집권 3년차로 권력기반을 넉넉히 다져놓은 YS의 보복으로 여겨 고향 합천행(行)을 택하는 것으로 '어깃장'을 놨다. 수사는 합천에 내려간 전두환을 붙잡아 구치소에 집어 넣는(12월 3일) 것으로 절정을 이뤘다. 1심에서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징역 22년6월형이 선고됐다. 국민적 요구로 5.18 특별법도 제정돼 수사는 확대됐다. 법원은 12.12는 군사반란, 5.17은 내란, 대기업에 받은 돈은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군사반란을 통해 군부와 정권을 불법 장악한 '수괴'라는 점을 법적으로 증명한 사건 이었다. 그래서 당시 검찰과 언론은 '노태우씨 비자금 사건 공소장'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들은 발가 벗겨졌다.

마침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예고돼 전·노씨 비자금 사건 공소장과 판결문을 뒤졌더니 잊혀졌던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이다. 공소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1991년 경 노태우가 경제수석비서관인 피고인에게 기업가 중에 청와대에 돈을 내는 등으로 기여를 하고 싶어도 통로가 없어서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하며 대기업 회장들을 독려하라는 뜻을 표하자 적극 권유하기로 마음 먹고. 1991년 10월 중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소재 하이얏트 호텔 일식당에서 동양그룹 회장 현재현을 만나 '총선자금이 필요하다'며 10억원을 권유해 같은달 청와대 안가에서 노태우가 받도록 하고".

같은 해 11월 김종인은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 커피숍에서 대한유화회장 이정호를 만난다. 그는 마찬가지로 총선자금이 필요하다며 20억원을 요구한다. 이정호는 안가 만남에서 "경쟁기업보다 우대를 받거나, 불이익이 없도록 해달라"는 취지로 10억원을 바친다. 김종인은 1991년 4회에 걸쳐 60억원을 모금했다. 그는 재판에서 뇌물성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고 항변했으나, 실형을 면치 못했다. 그는 이와별개로 1994년 1월 서울고법에서 특가법상뇌물죄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추징금 2억1천만원)을 선고받았다. 동화은행 뇌물 사건 이었다.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더민주당을 탈당해 이른바 '제3지대'를 모색하고 있는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캠프의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경제공약을 주관한 바 있다. 그랬던 박근혜 정부 정책조정 수석 안종범은 '지시에 의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강제모금(800억원 상당)이라는 '판박이 사건'을 저질러 구속됐다. 김종인의 강제모금 망령이 되살아 난 것이나, 그가 여태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교사·킹 메이커' 역할을 하는 것 역시 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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