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시인·참도깨비도서관 관장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춘래 불사춘(春來 不似春). 눈밭에 복수초 피고 매화, 목련, 개나리, 벚꽃, 진달래가 이어달리기를 하듯 피는 봄인데도 아직도 봄 같지가 않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 와서 그런 것일까, 끝내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 안아 보는 /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이성부 시 <봄>)처럼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는 것일까. 요즘 나는 끝내 돌아오지 않고 죽은 고래만 건져낸 4월 바다만 같다.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호드기를 불어도 먹먹하기만 하다. 누구는 이제 그만 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너무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탓일까. 먼 데도 아닌 우리 복판에서 이기고 돌아와서 더 아린 것일까. 무너지고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지만 무슨 병균처럼 창궐하며 발목을 부여잡으며 막나가자는 드라마 같은 일로 쌓인 적폐들로 우공이산(愚公移山)할 판이다. 누구는 풀 한 포기 건드리기도 어렵다고 하겠지만 새로운 길을 내려면 당연히 산을 옮겨야 한다. 삶의 질이 몇 킬로 더 뻗어나고, 1일 생활권으로 묶이는 고속의 길을 내자는 것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무슨 질량보전의 법칙 같은 것을 들이대며 막겠지만 시간이 더디 걸리더라도 한 삽씩 떠내야 할 때이다. '춘래 불사춘'이지만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 한다.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그를 감히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눈이 부시기에 다시 고쳐 봄이 적어야 한다. 우공도 말했다. 생각이 막히면 고치기 어렵다고, 내가 죽더라도 아들이 손자를 낳고, 그 손자가 또 자식을 낳아 자자손손 끊이지 않으니 더 커지지 않는 산이 어찌 평평해지지 않겠느냐고.

다시 고쳐 봄이라 적으니 꽃들이 진보주의자 같다. "꽃샘 추위가 와도 핀다면 핀다 /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핀다 / 어제의 꽃이 오늘 꽃이 아니듯 / 저 자신도 무엇으로 거듭 날지 / 정해주지 않고 / 가고자 하는 길 위에 / 벼랑 위에서 한 걸음 내딛는 / 아름다움만 있을 뿐 /꽃놀음이나 이념에 매이지 않고 /실천할 뿐이다 /무리 지어 피면 더 아름답다고 하나 / 한 패를 만들지 않고 / 오로지 저 혼자 꽃이다 / 나아갈 뿐이다" 이렇게 적고 나니 먹먹했던 마음이 뚫리고 정신이 바짝 든다. 어느새 옮겨놓은 듯한 산마다 앞다투어 피는 꽃들이 말해주는 이야기를 적었을 뿐이다. 그들을 그려보면 안다.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는 자의 눈부심을. 서로가 그 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저 혼자로서 기꺼이 뛰어들었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왔음을 안다. 꽃들이 이어달리기로 피지만 그들끼리 대화하며 아름다움을 만들었듯이 민주광장의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촛불 말풍선을 달고 대화하는 이들이었음을.

이종수 시인

'장미 대선'이라고들 한다. 그날을 상징적인 우공이산의 봄날로 기억하며 자자손손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비를 '흐르는 햇빛'이라고 한다던 남태평양 어느 나라 사람들처럼 새로운 풀과 나무, 꽃들에게 박수를 쳐주며 서로서로 축제와도 같은 날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꽃잎과도 같은 투표지들을 체육관 한 가득 펼쳐놓고 가름하며 서로에게 박수를 쳐주는 봄이었으면 좋겠다. 다시는 춘래 불사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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