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삼성그룹 최고경영진만 참석하는 수요회의는 분위기가 워낙 엄숙해 '어전(御前)회의'라고 불린다. 사장단은 순서에 따라 브리핑을 하고 회장은 중간 중간 질문을 던지면서 지시를 내렸다. 이병철·이건희 회장이 입을 열면 회의실에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만큼 조용했다고 한다. 거대기업 삼성 오너의 권위를 상징한다. 수요사장단 회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 회의를 주재하는 이재용 삼성부회장도 눈빛 하나로 '심쿵'하게 한 인물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이 부회장은 '대통령 눈빛이 레이저빔 같을 때가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말했다"고 특검에서 진술했다.

박 전대통령은 "말을 조리있게 하지 못하고 어법도 괴상하다"(박근혜의 말/최종희). 그러다 보니 극도로 말을 줄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모습이 오히려 대중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소통부재의 언어습관에 속아 넘어 간 것이다. 박 전대통령은 때로 논리적인 말보다 '레이저빔 눈빛'으로 상대방을 제압했다. 하지만 국가를 '눈빛'으로 통치할 수 없다. 국가지도자의 언어는 통치행위 그 자체다. 자신의 언어를 통해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국가지도자의 말은 단순한 개인의 의사 표현이 아니라 국가 운영 철학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의 언어를 수사학 관점으로 연구한 김은정 경희대 소통문화연구원의 글이 관심을 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대표되는 경험주의 소통 방식을 드러냈다. 자신의 과거 경험 등을 언급하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경험을 앞세워 상대를 가르치려 드는 강압적 소통으로 받아들여져 설득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먼저 잘못을 사과한 뒤 앞으로의 결심을 밝히는 문제해결 방식의 능동적 언어를 주로 활용했다고 한다. 반면 박 전대통령은 상황이 불리해지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처럼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정서형 진술'을 구사했다. 김 연구원은 "노무현 전대통령 이후 대통령들이 국민을 바라보는 시각과 소통 방식이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는 경향성이 또렷했다"고 말했다.

유력 대선후보인 문재인과 안철수는 어떨까. '적폐'와 '정권 교체'를 입에 달고 사는 문 후보의 언어습관은 조목조목 문제점을 따지고 신중하게 대안을 내놓는 방어형 커뮤니케이션 유형이다. "또렷한 눈빛과 조용한 말투, 논리 정연한 어법"(한지원)이라는 후한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논란의 여지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구체적인 수치를 인용 하는 등 팩트 위주로 발언을 하지만 딱딱다하고 지루한 느낌이 든다"(최효정)고 지적도 있다. 반면 과거 '모범생 말투'를 탈피해 소몰이 화법으로 목소리를 굵게 바꾼 안철수 후보는 '책임', '개헌' 과 같은 단어의 사용빈도가 높은 편이다. 전문가들은 부드러운 눈맞춤과 순박한 미소를 갖고 있지만 이번 대선에선 배수진을 치고 말투부터 강렬한 이미지로 변신하려는 노력이 묻어난다는 평이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하지만 어떤 언어습관도 경청과 공감이 뒷받침돼야 소통이 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여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 직업은 국민들에게 정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게 국민들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했던 오바마의 말은 입보다 귀를 더 열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