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선거판에서 유권자의 심리를 제대로 맞춘 홈런성 공약은 때로 지지율을 끌어올리거나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 역대 대통령 선거 중 가장 논란을 일으킨 공약은 1992년 14대 대선 당시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의 '반값 아파트'였다. 집 없는 서민들에겐 매우 매력적인 공약이었다. 정 후보는 초·중학교 전면 무료 급식, 2층 고속도로 건설 등도 공약으로 제시했다. 시대를 앞서간 공약으로 지지율은 견인했지만 허황된 공약으로 폄하돼 당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반면 잘 만든 공약으로 대권을 거머쥔 후보도 있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시종 앞서가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겨냥해 내건 승부수가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이었다. 행정수도 공약은 박빙(薄氷)의 선거구도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충청권의 표심을 뒤흔들면서 대권 쟁취의 일등공신이 됐다.

그래서 각 후보 진영에선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는 공약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짜낸다. 하지만 때론 황당하고 엉뚱한 공약이 등장하는가 하면 재원대책도 없는 장미빛 공약이 남발된다. 포퓰리즘 공약의 대표주자는 '허본좌'로도 널리 알려진 민주공화당 허경영 전 총재다. 국회의원 300명 정신교육대 입소, 유엔본부 판문점 이전 유치, 산삼뉴딜 정책으로 100만 일자리 창출등은 공약이 아니라 개그콘서트 대본수준이다. 그는 1997년 제 15대 대선에서 결혼 시 1억원 지급과 출산 시 3000만원 지원을 공약으로 내걸어 유권자에게 이름만큼은 확실히 각인시켰다.

시대가 변해도 선심성 공약은 여전히 단골메뉴다. 이번 대선의 군소후보들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거나 비현실적인 이색공약을 내놓았다. 이경희 한국국민당 후보는 다자녀 가정에 대해 아파트를 무상 제공하겠다고 공약했다. 아울러 셋째 자녀 가정에 5000만 원, 넷째 이상 가정에는 1억 원의 출산 장려금도 지급하겠다고 했다. 오영국 경제애국당 대선후보는 금고, 구류 등의 형벌을 모두 벌금형으로 통일해, 50조 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을 2018년 말까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2020년까지 대기업의 비정규직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다. 당선가능성이 거의 없는 군수후보들의 공약은 실현가능성이 없지만 유력 대권주자의 공약이라면 얘기 다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81만개의 공공부문 일자리 공약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가장 민감한 쟁점(爭點)이었다. 일자리를 못 찾아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겐 솔깃한 공약이다. 하지만 투입되는 예산이 어마어마하다. 전문가들은 공무원은 한번 뽑으면 해고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재정부담이 심해지고 인재들이 공직으로 몰려 노동시장의 활력을 떨어트린다고 지적했다. 국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는 젠틀한 학자지만 공무원을 늘리고 예산을 마구 쓰며 '공짜점심' 약속을 남발하는 정부는 '도둑'이라고 험한 말을 퍼부었다. 양식 있는 후보라면 '장미빛 공약'보다 실천가능한 공약을 제시하고 국민에게 고통분담을 먼저 호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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