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일제 말기인 1940년, 한 사이비종교 집단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이 드러나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 이른바'백백교(白白敎)사건'이다. 전정운과 그의 아들 전용해가 곧 세상의 끝날이 올 것이라는 종말론을 내세우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백백교를 믿어야 한다고 속여 신도들을 모아 재산을 갈취하고 성을 유린했다. 서양은 불로 망하고 동양은 물로 망할 것이라며, 오로지 백백교도들만이 교주 대원님의 구원을 받아 이상향으로 안내될 것이라 했다. 식민주의 폭력에 시달린 백성들 가운데 허황된 감언이설에 속아 재산을 내놓고 딸을 바치는 이들이 많았다. 한 번 빠져들면 벗어날 길은 없었다. 사건이 불거진 뒤 살해당해 암매장되었다가 발굴된 시신이 346구나 되었다. 희생자가 450명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었다. 도망친 교주는 양평의 용문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되고 공범 12명이 사형당했다. 월북한 소설가 박태원은 이를 '금은탑'이라는 소설 속에 재현해 내어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몇 해 전 판사소설가 도진기가 낸 탐정소설 '유다의 별', 지난해 문병욱이 낸 '사건 치미교 1960'도 이를 제재로 한 작품들이다.

유사종교 집단의 출현과 그들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끊일 줄을 모른다. 용화교, 다미선교회, 영생교, 아가동산, 장막성전, 오대양, JMS, 신천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유사종교만 예시해 보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유사종교 집단들이 활동중이다. 최근에는 진돗개를 신성시하는 유사종교인들이 악귀가 들어 말을 잘 안 듣는다며 세 살 난 어린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적발되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민주 국가에서 종교의 자유는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로 존중되어야 하지만, 사회 일반의 규범이나 안정성을 해치고, 도덕적 건강성을 위협하는 정도에 이르도록 해서는 안 된다. 우리사회에서는 지금도 재산이나 노동력을 편취하고, 성을 유린하는 등의 범죄 행위를 자행하며, 심지어 비판적이거나 방해세력에 대한 테러 또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유사종교 집단의 존재가 왕왕 보고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이들을 단순히 개인의 종교적 일탈로 치부하고 그 역기능 현상들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사종교 문제가 그리 가볍지 않다는 사실이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다. 반 년 넘게 국정을 표류시키고 나라를 극도의 혼란과 위기 속에 몰아넣은 초유의 사태가 사실은 최태민이라는 한 사이비 종교인의 출현으로부터 잉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종파의 경계를 넘나들며 필요에 따라 무속인, 승려, 목사의 신분을 가장하고 행세한 사이비종교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드러났다. 그의 딸 최순실과 짝하여 나라를 가히 '국란'의 지경에 빠뜨린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은 사실상 사십여 년 전에 처음 만난 이 사이비종교인의 사술(詐術)에 연원이 닿아 있다. 그런데도 사이비종교인 또는, 유사종교 집단의 반사회적 역기능 현상들을 통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논의는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아하고 걱정스런 일이다.

앞선 글에서 나는 박 전 대통령의 독서량의 빈곤과 인문학적 교양의 결핍을 의심한 바 있다. 그 의심에는 여러 근거들이 염두에 있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그가 한 사이비종교인의 사술에 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식의 지평이 넓고 사고의 깊이가 있다면 일곱 번씩 이름을 바꿔가며 여섯 명의 아내를 두고 사는 동안 무려 마흔네 건의 전과가 있었다는 사람의 사술에 그토록 깊이 침윤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성황후의 영혼을 쥐락펴락한 무녀 진녕군(晉寧君)의 예도 있거니와, 종교에 대한 그릇된 이해와 인식은 종교인 개인의 삶을 황폐화 시킬 뿐만 아니라 나라의 기반을 흔드는 위험요소가 되기도 한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 전쟁들 중에도 종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나 종교적 독단주의에서 비롯된 것들이 태반이다. 늦었으나마 국가 차원의 종교교육이 시급한 시점이다. 지금 당장 누구라도 가운 입고 목사 행세를 할 수 있고, 가사를 걸치고 나와 승려 행세도 할 수 있는 게 현실이지만 종교계는 이미 자정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가정 파탄, 가족 해체 등의 사회적 역기능 현상이 심각하고, 거듭 나라를 혼란스러운 지경에 빠뜨릴 만큼 횡행하는 사이비종교인이나 유사종교 집단의 발호를 마냥 팔짱끼고 바라볼 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대의를 위해 머리 맞대고 지혜를 짜 낸다면 강고한 종파주의의 벽도 넘지 못할 것 아니다. 문재인 정부, 종교교육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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