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의 수필가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농촌에서 자라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농사짓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마침 주말농장 분양하는 곳이 있어 신청했더니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배정받았다. 몇 평 되지 않고 거리도 멀어서 귀찮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어떤 곳인가 궁금했다. 돌밭이다.

커다란 돌은 어느 정도 골라낼 수 있지만 돌멩이는 흙과 엉겨 붙어 있어서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 원래는 논이었던 곳을 흙으로 메꿔 밭이 되었다. 흙 받을 때 돌흙을 받은 것이다.

아름다운 상상으로 주말농장을 생각했던 나는 속은 기분이 들었다. 항의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괜찮다, 작년에도 잘 키웠다. 모두 만족했다고 한다. 책임 회피하려는 말 같아 더 불쾌했다.

올해는 바람도 잦고 미세먼지가 심해 밖에 나가는 일을 삼갔다. 그날도 실내에 앉아 이야기하는데 텃밭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돌밭에 대한 불만으로 고민 중이어서 의견을 물었다. 심는 시기가 지나긴 했지만, 감자가 좋을 거라며 심는 방법까지 자세히 알려주었다.

덤으로 얻은 씨감자를 심어야 하는데 분양받은 곳의 땅은 경작하라는 말이 없다. 주인에게 사정하고 감자를 심기로 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흙은 돌처럼 딱딱하고 돌은 겉돌았다. 바람은 거친 흙먼지를 뿌렸다. 흙을 잘게 부수고 거름 주고 큰 돌 줍는 내내 화가 났다.

감자 심고 비닐 씌울 때는 바람이 더 세찼다. 한쪽을 잡으면 다른 쪽에서 날아가고 두 손으로 잡으면 중심 잡기가 힘들었다. 흙을 편편하게 하면 좋을 듯하여 연장을 가져왔다. 돌이 얼마나 많은지, 흙과 돌과 연장이 부딪치는 소리가 날아가는 비닐 소리까지 겹쳐 신경을 자극했다. 일도 서툰 데다 돌밭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겹쳐 일은 더디고 힘들었다.

바람은 여전히 불었지만, 햇볕은 더 따뜻해진 날. 감자 심고 남겨둔 땅에 씨 뿌렸다. 분양한 곳에서 제공한 씨였기에 혹시 하여 뿌렸을 뿐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잊었다.

봄기운이 밝아졌다. 지인을 다시 만났다. 봄바람도 미세먼지도 가뭄까지 이겨낸 기특한 상추라며 건넨다. 출산 후 처음 아기 얼굴 보듯이 봉지 속 상추를 보니 풋 냄새가 잊은 기억을 깨웠다. 봄은 절정이었지만 마음은 돌밭 감정에 메어 풀어지지 않고 있었다.

밭에 갔다. 상추, 아욱이며 완두콩까지 커다란 돌을 밀어내고 단단한 흙도 들어 올리고 다복이 햇볕을 쬐고 있었다. 옹졸했던 나를 나무라듯 꼿꼿하게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었다.

흙 힘을 옥상에서도 느껴보고 싶었다. 스티로폼 몇 개를 구해서 나뭇잎이 썩어 잘 발효된 흙을 담았다. 거름도 넉넉히 주고는 모종 상추를 심었다. 두 군데서 가꾸는 상추는 또 다른 즐거움과 희망이 되었다. 씨 힘으로 싹터 나온 상추 흙은 척박하다. 거리도 멀어 가뭄을 견뎌야 한다. 반면 옥상 상추는 14 충이고 콘크리트다. 그러나 흙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른 아침 옥상 상추를 보러 갔다. 미세먼지로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지만 청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골이 깊어진 우암산 녹음이 가깝게 와 닿고, 뒷산 아까시 나무 그늘은 짙다. 아침에 먹을 몇 개 따려는데 거미줄 아래로 달팽이가 기어간다. 회색 줄무늬 곤충도 보인다. 놀랍고 신기하여 다가가니 기척에 놀라 빠르게 움직인다.

영화 '킹콩'을 다시 봤다. 원주민들은 여주인공을 납치해 그들의 의식대로 킹콩에게 제물로 바친다. 자신이 제물이라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주인공과는 달리, 킹콩은 애정의 감정을 자신답게 드러낸다.

나한테서 도망치는 것 같은 곤충을 보며 킹콩이 된 기분이다. 내 감정은 평온하고 시선은 따뜻한데 마음을 알지 못하는 곤충은 작은 스티로폼 안에서 허둥댄다. 상추를 포기하고 일어났다. 흙냄새도 같이 일어선다.

저녁 무렵에는'공항 가는 길'에 갈 생각이다. 밭이 공항 근처에 있어 붙여준 이름은 부를 때마다 설렌다. 여행가는 것처럼 출발하고 자라는 농작물보며 감동받고 돌아오는 길은 수확한 선물까지 있다. 밭은 내 마음의 여행지가 되었다.

그 곳은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밭길을 걸으면 먼지가 날아오른다. 이젠 흙먼지는 익숙하다. 퇴비 냄새도 잠깐이다. 뒤늦게 나온 감자는 꽃봉오리가 보이고 가뭄 속에서도 밭은 푸르다.

조영의 수필가

처음부터 먹 거리를 생각하며 신청한 것은 아니다. 흙 밟고 식물을 가꾸면 온전하지 못한 내 자아를 회복할 수 있을까. 현대인으로 살아가면서 입은 상처를 치유 받고 싶었고, 복잡한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면 했다. 납작했던 완두콩 꼬투리가 동글동글하게 보풀어 올랐다. 바라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만하다. 조급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마음, 흙이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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