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이낙연(오른쪽) 국무총리가 2일 오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접견실에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면담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지난 4월 대선불출마를 전격적으로 선언하고 미국으로 출국해 하버드대에서 전직 국가원수급을 대상으로 한 초빙교수로 활동해온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다시 재연되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논란이 일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한때 대선 라이벌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외교현안에 대해 논의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이 불안한 현실에서 10년간 유엔사무총장 경험과 풍부한 국제사회 네트워크를 가진 반 전 총장의 역량을 발휘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당선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한때 대척점에 섰던 반 전 총장을 만난 것은 그만큼 그의 도움이 절실할 만큼 대미관계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최근 사드를 둘러싼 국내 조치가 한미동맹과 대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반 전 총장에게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자문을 구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미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문 대통령이 '사드 누락보고'에 대한 진상조사를 지시하면서 지난 31일 청와대를 방문했던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가 "한국이 사드를 원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사드예산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됐다. "한국이 사드가 필요 없다면 가져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측의 이 같은 발언은 한·미 양국 합의에 따라 반입된 사드 발사대 4기에 대해 청와대가 진상조사를 실시하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사드를 철수한다면 한미동맹은 악화 될 수밖에 없다. '안보자해행위'라는 비판이 나올 만 하다. 미국 언론은 "사드를 놓고 벌이는 드라마는 분명히 중국의 환심을 사려는 문 대통령의 시도"라고 보도했다. 중국이 사드논란으로 한·미간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의도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반 전총장의 외교적인 경륜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전에도 "꼭 정치가 아니더라도 외교 등 다른 분야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실 길이 많이 있을 것"이라며 "외교 문제에 관해서는 많은 자문과 조언을 받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반 전 총장은 지난달 18일 문 대통령과 통화에서 "도울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과 맺은 인맥은 물론 지구촌 현안에 직접 관여하면서 체득한 외교적 경험이 독보적이다. 그만큼 국가의 소중한 외교적인 자산이라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시기에 반 전총장의 외교적 역량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무엇보다 반 전총장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반 전 총장은 문 대통령이 취임이후 입장문을 내 "안보태세를 굳건히 하면서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중국·일본·러시아 등 인근국과의 긴밀한 관계 구축이 외교적 급선무"라고 조언한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반 전총장이 아무리 진심을 다해 돕는다고 해도 청와대와 여권의 잇따른 사드발언으로 미국의 의심과 우려를 증폭시킨다면 한미동맹이 원활해지긴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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