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 배 봉지 씌우기
[주말에세이] 배 봉지 씌우기
  • 중부매일
  • 승인 2017.06.1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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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수필가

지난주 금요일 성화죽림개신동 청주시생활개선회에서 남이면 과수농가로 배 봉지 씌우기 농촌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중요한 일이 있음에도 뒤로 미루고 기꺼운 마음으로 동참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농장에 도착하니 빨간 울타리 장미와 노란 달맞이꽃이 환한 미소로 환영한다. 회장님을 비롯한 청주시농업기술센터 남이 지소장님과 먼저 온 회원들이 따끈한 커피와 김밥으로 기쁨을 준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오천 평이 넘는 농장의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어 너나 할 것 없이 함박웃음이다. 지금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이화(梨花)가 만발했을 때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저절로 시구가 떠오를법한 풍경이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잘못할까 걱정된다고 하니, 배워서 하면 되니 걱정하지 말란다. 전문 강사 못지않은 농장 대표의 유머러스한 설명과 시범에 걱정했던 마음이 조금은 사라졌다.

배 봉지 씌우는 작업은 병충해 방제는 물론 과실의 빛깔을 좋게 하여 품질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하므로 농가의 부담은 있지만, 농약 등으로 인한 오염 방지를 위해서 아니할 수 없단다.

막상 실전에 들어가 배 봉지를 씌워보니 교육을 받을 때와는 달리 쉽지가 않았다. 지난해 참여했던 회원들은 능숙한 솜씨로 하는데 꾸물대고 있는 나 자신이 답답했다. 직장 다닐 때와는 달리, 사회에 나오니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민망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졌다. 할만하다 싶으니 이번엔 목, 허리,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키는 작고 나무는 커서 사다리 끝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다친 다리 때문에 두어 칸밖에 오르지 못하니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사다리를 누가 옮겨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들고 다녀야 한다. 디스크로 물건을 잘 들지 못하는 나에게는 가벼운 사다리라도 무리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간신히 사다리를 옮겨가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땀은 비 오듯 하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잠시 쉬고 싶어도 회원들이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한눈을 팔 수가 없다.

신규 회원인 만큼 불편하다는 소리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데, 마침 시원한 수박 새참이 나왔다. 먹는 것보다도 잠시나마 휴식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몇몇은 나처럼 힘들어하지만, 대개는 청정한 녹색의 향연에 힐링이 되었는지 더 생기로워 보였다.

화기애애한 회원들을 보며, 농장 대표는 엊그제 왔던 팀은 더위 때문에 고생 많이 했는데, 여러분은 하늘이 도와주는 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입 서비스인 줄은 알지만 분위기는 한층 더 좋아졌다.

아닌 게 아니라 구름과 해님이 숨바꼭질하고, 올라만 가던 수은주는 하루 사이에 5도나 떨어졌고, 바람도 솔솔 불어오니 어제와는 사뭇 다른 쾌적한 날씨이다. 시원한 배나무 그늘 아래서 땀 흘린 후 먹는 냉동수박이 어찌나 꿀맛인지, 피로가 싹 가신다. 게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성시대 재미있는 사연과 음악은 듣고만 있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처음엔 긴장하다 익숙해져 콧노래가 나오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들어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는 데다 손목에 힘은 빠지고, 속도 메스꺼워 조금 더하단 쓰러질 것 같아 겁이 났다. 하던 일을 멈추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는데 점심시간이란다. 구세주가 따로 없었다.

김밥을 먹고 시작했지만 시장하던 참에 애호박 고명을 얹은 잔치국수는 가히 일품이었다. 양이 많다 싶었는데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절편과 달고 시원한 수박까지, 배가 부르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공무원 초년병 때 지역교육청 근무하면서 농촌봉사활동 몇 번 나갔으나 청주에 근무하면서는 양로원이나 에덴원 등 사회복지시설로 갔지, 농촌으로 간 기억이 별로 없어 꼭 해보고 싶었다. 이번에 좋은 기회다 싶어 열심히 했지만, 의욕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음을 느꼈다.

다른 회원들은 열심히 하는 데다 일도 참 잘한다.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의 마음이 되어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또한, 일부 회원과 소장님은 팔을 걷어붙이고 미소 띤 얼굴로 주인과 함께 국수 삶고, 음식을 나르는데 봉사란 저런 것이구나 싶다. 끝까지 설거지를 하며, 뒷정리를 도와드리는 등 허드렛일을 하는 모습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봉지 씌우기는 이미 가지치기와 적과를 마쳐 봉지만 씌우면 되니까 가장 손쉬운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힘이 들었는데 평생을 업으로 해온 농부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가히 짐작이 된다.

이난영 수필가

풍족한 세상에 살고 있어 우리가 먹는 쌀 한 톨, 과일 하나하나에 많은 농부들의 피와 땀방울이 들어간다는 것을 무심결에 잊고 있었다. 생명줄의 원천을 이어주는 농민들의 피와 땀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몸은 힘들었지만, 일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흡족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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