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최용현 변호사

전국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 총파업으로 학교 급식이 중단된 30일 낮 12시 대구 수성구 시지초등학교 급식실이 텅 비어있다. 2017.06.30./ 뉴시스

지난 29, 30일 양일간에 학교 비정규직의 총파업이 있었다. 우리 지역에서도 29일 8개, 30일 56개 학교의 비정규직들이 동참하여, 학교 급식이 중단되고 학생들이 빵이나 도시락으로 대체 급식하는 불편을 겪었다. 비정규직과 노조파업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다분히 양면적이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지는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에서 비롯되고,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위하여 사회경제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로 바라본다. 노조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노조의 파업에 대하여는 귀족노조의 이기주의, 시민을 볼모로 한 떼법이라고 비난하기 일쑤다. 이러한 인식은 얼마나 진실에 부합할까? 보수이데올로그들의 왜곡과 과장에 의한 잘못된 정서와 상식이 아닐까?

학교 조리원, 공공청사 경비원, 회사 청소원 지위는 처음부터 자신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상대의 궁박한 처지나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는 것은 명백히 범죄행위다. 당장의 생계를 위하여 취업에 목을 맨 시민들을 대상으로 비정규직을 내놓고 유인하고, 상대방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빌미로 부당한 관계의 지속을 주장하는 국가와 기업은 범죄자에 불과하다. '비정규'는 영어로는 atypical, non-standard, irregular다. 즉 고용관계에서 反정상이고 不정의하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는 어떤 경제논리나 경쟁원리를 동원하여 포장하기 이전에, 고용에서 만연된 범죄의 축출, 비정상사회의 정상화, 본래의 고용정의로의 회귀라는 사회정의 차원으로 접근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노동유연성이 악화되어 기업과 국가경쟁력을 저해한다? 이는 전혀 증명되지 않는 신화이며, 허위로 가득 찬 기업이데올로기다. 그 신화와 이데올로기는 유럽 선진국이나 선진기업은 오히려 고용안정과 노동복지를 이루어 더욱 높은 경쟁력과 발전을 이룩하였다는 객관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기업과 국가경쟁력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것의 의미는 결국은 기업주의 탐욕스런 이윤과 정치인들의 허잡한 고용실적이라는 숫자일 뿐이다. 비정규직 확대나 노동유연성 강화는 오직 그 숫자를 위해 시민과 노동자들을 송곳 위에 세우는 것이다.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정규직노조의 파업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노조의 이기주의라는 비난이다. 심지어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강성귀족노조를 대한민국의 3대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때려잡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러나 OECD 국가중 우리나라는 빈부격차가 제일 심하고, 근무시간도 최장이고, 노조조직율은 10%정도에 불과하여 최악의 반(反)노동 국가이다. 최악의 지위에서 최장 시간을 일하고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노조조차 제대로 구성하지 못하는 게 현실인데, 이게 무슨 귀족이고 무슨 강성이란 말인가. 남세스러워서라도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

노조가 시민을 볼모로 파업을 한다? 이번에도 보수학부모단체는 아이들을 볼모로 학교 비정규직이 파업을 한다며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파업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며 그들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 권리다. 이러한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시민들 스스로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기본 자세다. 노동자의 시민권과 생존권이 다수 시민들의 사소한 불편이나 약간의 손실보다 훨씬 중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볼모로 하는 것은 노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보수단체다. 그들은 아이들의 한 끼 급식 불편을 빌미로 자신들의 反노조, 反노동 이데올로기를 관철하려 하는 것이다.

최용현 변호사

오히려 한 끼 급식 불편으로 내 아이가 사회경제적 약자의 처지를 알게 되고, 우리사회의 비정규직의 문제나 노동자권리, 사회정의 등에 대하여 배우게 된다면, 그보다 좋은 교육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고1 아들에게 차라리 한 끼 굶으라고 하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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