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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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담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다. 미천한 집안이나 변변하지 못한 환경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예전엔 궁핍한 가정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검정고시로 간신히 고교를 졸업했으나 고시에 합격해 하루아침에 신분이 달라진 감동적인 성공스토리는 흔했다. 충북이 고향인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청계천 판차촌과 경기도 광주 천막에서 성장해 은행원으로 첫 발을 내디뎠으나 주경야독한 끝에 행정고시와 입법고시를 패스해 고졸신화를 쓴 주인공이 됐다. 박근희 전삼성생명 부회장은 실업고(청주상고/현 대성고)와 지방대(청주대)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가 즐비한 삼성그룹에서 오랫동안 CEO를 지냈다. 하지만 요즘 지방대학생들에겐 꿈같은 얘기다. 80년대 이후 학벌과 스팩, 배경이 취업의 기준이 되면서 소위 흙수저와 지방대 출신이 공공기관과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힘들어졌다. 이에따라 지방대 학생들의 좌절감이 심화됐으며 취업시장에도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청년실업난을 가중시켰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을 강조하면서 지방대 취업준비생들에게 희망이 생겼다. 하반기부터 공공기관 입사지원서와 면접에서 출신지역, 가족관계, 신체적조건, 학력게재를 금지하는 블라인드 채용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당장 8월에는 지방공기업, 9월부터는 지방공공기관에 순차적으로 확대 적용된다. 블라인드 채용이 실시되면 지방대, 전문대, 고졸 취업준비생이 학력 차별 없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 응시하는 직무와 관련된 학점, 경력, 자격증만 보고 나머지는 모두 이력서에서 제외된다. 명문대와 유학파가 경쟁력을 갖는 것도 아니다. 이렬 경우 지원자의 학벌과 스펙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지방대 출신 등을 서류전형에서 줄줄이 떨어트렸던 현행 공공기관 채용제도의 문제점이 개혁되는 것이다. 실력과 능력을 갖춘 지방대 인재들에겐 자신이 원하는 공공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블라인드채용이 제대로 정착된다면 대학의 서열화와 학벌위주 사회가 개선되고 가정형편이 좋은 학생들에게 유리한 스펙 쌓기도 채용의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단지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서류전형에서 탈락해 필기시험을 볼 기회조차 없었던 젊은이들에겐 공공기관 취업을 위해 도전의지를 불태울 수 있다. 기회균등과 공정경쟁을 바탕으로 한 블라인드 채용은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과 '루저(패배자)'라는 말로 폄하 받는 지방대 출신들에게 향후 진로에 대한 꿈과 용기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재능도, 실력을 쌓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 지방대출신은 서울소재 명문대 취준생들의 둘러리만 설 수도 있다.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기대는 크지만 당초 시행취지에 맞을지는 불투명하다. 내달부터 시작되는 663곳 지방공공기관 입사시험 결과는 블라이드 채용의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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