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 교수의 역사에 비춰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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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자 보도에 따르면 우리 국민 대다수는 '슈퍼대기업' 법인세율 인상과 '초고소득자' 소득세율 인상에 찬성한다고 한다. 각각 73%, 79%가 찬성한다고 하니 국민 3/4 정도가 찬성하는 셈이다. 물론 각기 반대 21%, 18%도 있었다. 아마 그 중에는 당장 세금이 올라갈 사람들, 대기업 관련자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 역시 올해부터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싫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과연 세금을 더 내는 것은 싫은 일이기만 할까? 조금 생각을 바꾸어 세금을 더 부담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해 보면 한결 기분이 나아질 것이다. 내가, 혹은 우리 기업이 세금을 더 부담할 여력이 있어서 세금을 더 내고, 그만큼 우리나라의 인프라나, 국방이 튼튼해진다면 그만큼 국가에 더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박수와 명예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들 중 대표적인 보수주의자로 카토라는 사람을 꼽는다. 그는 로마의 전통과 관습을 소중히 여기며 애국을 최고의 가치로 놓은 사람이었다. 카토는 기원전 95년에 태어나 46년에 죽은 사람이다. 그는 로마가 서부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카르타고와 겨루었던 3차례의 로마-카르타고 전쟁(포에니 전쟁) 중 일명 한니발 전쟁이라고 불리는 제2차 전쟁 시기와 그 직후에 활약했던 인물이다. 이 시기는 로마가 위기는 겪었지만 계속 발전하고, 영토도 엄청나게 확장한 시기였다. 전쟁의 승리로 로마는 엄청난 재화와 땅을 얻었던 것이다. 그리고 풍족한 재정을 바탕으로 문화와 예술도 화려하게 꽃피운 시기이기도 했다.

카토는 젊은 시절부터 전쟁에 참여하여 상당한 군사적 업적을 쌓았고, 탁월한 웅변술과 정치적 역량을 보유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복한 땅인 속주의 총독으로 근무할 때, 마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닐 정도로 검소하고 청렴한 인물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장관급 인사가 관용차를 타지 않고, 임기 내내 지하철로 출퇴근한 셈이다. 그는 결국 로마 최고의 관직인 집정관도 역임했고, 그 후에는 원로원의 켄소르로 선출되었다. 켄소르는 대단히 중요한 직책일 뿐 아니라, 그 권한도 광범위했다. 우선 인구 조사를 담당했는데, 인구 조사가 국방과 조세에 직접 관련이 되므로 오늘날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업무였다. 그밖에 공직자에 대한 감찰, 시민들의 풍기문란까지 단속하였으므로, 로마의 공적 생활 뿐 아니라 사적 생활까지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카토는 켄소르 선거에 나설 때, "엄정한 켄소르가 되겠다. 로마를 정화하겠다!"라고 공약을 내세웠다. 그리고 켄소르가 된 후, 직권을 남용한 원로원 의원들을 제명하고,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철저히 단속했다. 그리고 국책 사업을 계약할 때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고 청렴한 태도로 업무를 수행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임기 중에 사치세를 만들어 부과했다는 점이다. 장신구, 사치스러운 의복, 비싼 마차 등 사치품에 3%의 사치세를 물린 것이다. 스스로도 재산가이기도 했던 그는 부의 축적에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획득하거나, 국가에 기여해야할 재산을 함부로 쓰는 것에 혐오를 느끼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윤진 충북대 사학과 교수

사치 때문에 세금을 더 내야했던 이들과 세금 때문에 사치를 못하게 된 자들은 그를 증오하였다. 그는 평생 엄격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며 재산의 형성과 사회 정의 구현은 병행할 수 있으며, 많은 재산을 가진다고 해서 불의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 세금의 납부와 기부 및 청렴한 공직 생활을 통해 부자가 칭송과 명예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몸소 보여주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돈이 많으면 많은 만큼 국가를 위해 더 봉사할 수 있음을 기뻐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카토의 생각이었다. 그는 진정 명예로운 보수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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