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커플의 지구별 신혼여행] 28. 슬로베니아 블레드와 슬로바키아
남편 친구부부와 블레드 호수 캠핑…궂은날씨·불편한 잠자리도 잊힐만큼
아름다운 풍경에 정다운 추억 쌓아…아침햇살·새소리·바람·석양·나무

슬로바키아 모라바 강과 도나우 강이 만나는 절벽위의 데빈 성에서.

후후커플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동반퇴사하고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난 조현찬(32)·연혜진(28) 부부다.


열흘 간의 크로아티아 여행을 마치고, 슬로베니아로 향했다. 슬로베니아로 신혼여행 오는 남편 친구 부부와 블레드 호수에서 1박 캠핑을 하기로 했다. 캠핑 매니아인 두 사람과 꼭 어울리는 신혼여행이었다. 여느 호화스러운 패키지 여행보다 그 둘에겐 훨씬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 분명했다.

슬로베니아 국경에서 여행 중 처음으로 '비넷(Vignette)'을 구입해 차 앞유리에 붙였다. 비넷은 유럽 내 일부 국가에서 반드시 부착해야 하는, 일종의 기간제 고속도로 통행권이다. 그동안 여행한 프랑스, 이탈리아, 크로아티아는 모두 한국과 동일한 방식으로 통행료를 지불했는데, 슬로베니아에서는 15유로를 내고 7일권을 구입해야 했다.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자동차로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자유로웠지만, 국가간 다른 교통 법규를 미리 숙지하느라 애를 먹었다.

슬로베니아의 유일한 섬, 블레드. 블레드 호숫가 바로 옆에 캠핑장이 있어 쉬기 좋다.

마침내 블레드 호수에 도착했다. 알프스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블레드 호수 한 가운데 떠 있는 블레드 섬에는 작은 성 하나가 보였다. 조각배를 타고 섬까지 들어갈 수 있지만, 우리는 비가 오는 바람에 먼 발치에서 섬을 담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예쁜 풍경을 옆에 둔 블레드 캠핑장에는 이미 많은 캠핑카들이 자리잡아, 겨우 텐트 두 개를 나란히 쳤다.

"언니, 오빠 결혼 축하해요!" 기수 오빠와 아름 언니는 채 가시지 않은 결혼식 이야기를 들려줬고, 오빠와 나는 작년 7월 우리의 결혼식을 떠올렸다. 팔짱을 끼지 않고, 평소처럼 내 손에 깍지를 끼고 결혼 행진을 하려고 했던 오빠가 생각나 웃음이 났다. 엊그제 결혼한 것 같은데 벌써 9개월이 다 되어가다니. 서로 많이 알아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시간도 함께 흘렀다는 게 피부로 와 닿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요 며칠 계속 우리를 따라다니던 비구름이 슬로베니아에도 잔뜩 끼었다. "비올 것 같아. 서둘러 밥 먹자" 언니와 나는 쌀을 불리고 채소를 준비하는 동안 오빠들은 불을 붙이며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캠핑하면 텐트 치고 요리하는 데도 오래 걸리고 침낭 속에 꽁꽁 싸매고 자야하는데도, 그래도 좋아. 운치있고 멋있어." "그래, 우리가 그래서 캠핑에 빠졌잖아. 원래 힘들게 밥 해먹고 힘들게 자는 게 캠핑의 묘미야." 요리 하나 하는 데 식수대를 몇번이나 왔다갔다 하고, 버너 불이 꺼질까 옹기종기 모여 바람을 막으면서도 뭐가 좋은지 우리 넷은 낄낄 거렸다.

밥을 다 먹자마자 귀신 같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허둥지둥 각자 텐트로 들어갔다. 탁탁탁탁탁탁, 빗방울이 더 큰 소리로 텐트 안에 울렸다. 제법 큰 소리였지만,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자연에서 나는 소리는 시끄러운 법이 없다. 우리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우리도 모르게 캠핑의 매력에 빠지고 있었다. 자연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때가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휴대폰 알람 대신 머리 위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로 잠을 깨고, 아침을 먹고 있노라면 머리 위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그뿐인가. 저녁 준비를 하다보면 온 세상이 타들어가는 듯한 석양을 보느라 식사가 늦어지기 일쑤고, 자기 전 남편과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있자면 머리칼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온전히 느끼며 그 고요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아아,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워간다. 그 중 제일은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다. 항상 옆에 있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는 중이다. 햇살 한 줄기, 바람 한 모금이 그러했고, 언제든 만날 수 있던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러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세계여행을 떠났지만, 동시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지에 대해서도 몸소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을 떠나온 지금, 나는 한국에서 직장 다니며 틈틈히 친구들을 만났던, 그 지극히도 평범했던 일상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모든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내 옆에 있는 남편에게 고맙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며, 비로소 내 안의 작은 거인을 만난 것에 행복할 따름이다. 이 여행이 끝나는 날, 내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녀야지 하고 다짐해본다. / 후후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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