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에세이] 김윤희 수필가

한낮 정수리로 쏟아지는 햇살이 따끈하다. 풋것들을 익히기 위함이다. 가을볕이 토해 놓는 열기는 여름날의 서슬 퍼런 열기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서분서분 다가서는 볕이 한결 누그럽다. 그 힘으로 가을이 익어가는 것이리라.

진천 청소년소련원으로 발걸음을 했다. 충북행복교육지구사업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행복교육지구 사업은 교육지원청과 지자체, 그리고 지역주민이 서로 협력하여 아이들이 원하고, 좀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민·관·학이 머리를 맞대고 각 주체에 대한 자각과 효과적인 운영을 위한 소통의 장으로 각 시군 관계자가 모여 회합을 갖는다.

완주교육청의 추창훈 장학사는 로컬에듀를 주장하며 그 지역 사례를 들었다. '아이를 존중하는 학교' '학교를 품은 마을' '마을과 함께 숨 쉬는 교육' 이라는 말이 강하게 와 닿는다. 이것이 바로 지향점이 아닐까. 막연했던 그림의 윤곽이 잡히는 듯하다.

두 번째 강의는 '청소년 자치배움터 만들기'란 주제로, 의정부 몽실학교의 김현주 선생이 맡아 주었다. 몽실학교는 학생 스스로 만들어가는 전국 유일의 학생자치 배움터로 알려져 있다. 학생들이 마을, 창업, 연구 등 다양한 프로젝트 활동을 직접 진행한다. 그 중 푸드 트럭 운영과정을 영상으로 보았다. 아이들이 주인 되는 삶의 모습이다. '내 삶에 필요한 배움은 내가 만들다'는 배움의 역습, 그 의미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관이 지원하고 주민들이 참여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꿈이룸 학교의 도전은 가히 선도적이다.

다음으로는 진안 교육협동조합마을학교 이정영 이사장의 '행복한 마을 만들기' 주제 강의가 이어졌다. 사라져가는 작은 학교를 지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 했다. 왜 다시 마을 공동체인가? 실질적인 민간의 역할이 돋보이는 내용이다. 올바른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학교뿐만 아니라 온 마을이 함께 품어 안아야 한다는데 초점이 모아진다. 더 좋은 학교, 일류로 키우기 위한 획일적인 교육에서의 탈피를 시도하고 있다. 내 아이, 아니 우리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아이들 잣대로 들여다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아이를 키우는 환경도, 방법도 다양한 시각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는 사고에서, 더불어 잘 키워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곳곳에서 활발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체감하는 현장이다.

세상이 참 많이 달라져 가고 있구나 싶다. 내 아이 키울 때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 이채롭다. 참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변화 되어가는 사회, 그 사회를 이끌어갈 아이들 교육문제를 놓고 민관학 관계자들이 모여 진지하게 토론하며 한밤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변화다.

그러나 하나의 목표로 두고 접근하는 과정에서 행정상 어려움도, 우려도 적지 않음을 느낀다. 진정 아이들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한 토대가 되는 교육을 향해 허물을 벗는 진통으로 여겨진다. 언제까지나 자리를 하고 있을 것 같던, 지루한 여름도 끝내 물러가고 상쾌한 가을이 오지 않던가. 간절기에 몸살을 앓듯 과도기의 현상이지 싶다.

얼마 전 진천교육발전공동체에서 인문학 부문에서 일정부분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하는 제의를 받았다. 내가 학교 교육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는,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와 학교 밖 수업으로 토요문화학교를 운영한 경험이 전부이지만 수락했다. 참여하고 보니 생각했던 지향점과 맥이 상통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로운 사고 속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가 행복한 일만을 위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지금 사회를 주도해 나가는 기성세대엔 오로지 공부 잘해서 출세하는 것이 지상 목표였기 때문이다.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으로 외치면서도 여전히 올바른 마음가짐 하나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좋은 학교, 일류대학에 입학하고 일류 회사에 취업을 했다하면 사람 됨됨이야 어떠하든 "자식 잘 키웠다"는 칭송을 받는다. 부모가 뿌듯하고 행복한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것과 아이가 원하는 것이 같을 경우야 더없이 좋겠지만, 아이가 원하는 행복이 부모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당당해질 수가 없는 것이 우리 사회 구조이다.

김윤희 수필가

기존의 틀을 깬다는 것, 내 아이가 아닌 우리의 아이로 키우기 위해 학교와 마을이 공동으로 나선다는 것은 진일보된 변화의 모색이다. 아이가 스스로 행복하다 느낄 수 있는 사회를 향한 시도는 분명 새로운 바람이다.

신선하다. 신선한 바람은 알곡을 여물리는 이 가을의 선물이다. 신이 내린.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