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최용현 변호사

우진교통 자료사진 / 중부매일 DB

며칠 전 필자가 진행하는 지역방송 시사토크프로그램에서 김재수 우진교통 대표와 토론을 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 지역 최대 버스운송업체인 우진교통은 2004년 150억원에 이르는 부채와 상습 임금체불로 파산위기를 맞았다. 결국 경영주는 회사 주식과 경영권을 노조에 인도하고, 노조는 민주화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였던 김재수씨를 새로운 대표로 영입했다. 이듬해 취임한 김재수 대표는 회사를 노동자자주관리회사로 만들어, 모든 구성원(노동자)들이 모여 회사의 주요 의사를 결정하고, 회사 대표부터 자주관리위원(이사격)까지 노동자들이 직접 선임하는 체제로 만들었다. 이후 우진교통은 투명경영과 고용안정을 이룸은 물론 경영실적도 탁월한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했고, 이러한 우진교통의 사례는 노동현장에서의 모범사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국내 수많은 논문은 물론 국제학술회의에서까지 연구와 토론대상이 되었다.

혹자는 김 대표와 우진교통 구성원들의 실험에 '인류의 꿈'이라는 거창한 미사여구까지 부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진교통과 같이, 온전히 평등한 시민들이 모여 모든 의사를 결정하는 공동체나 착취자가 사라지고 일하는 사람들끼리 자립 자조하는 연합체는 모든 인류의 영원한 이상이었다. 중세말의 토마스 모어, 근대의 생시몽 오웬 푸리에 프루동이나 그 이후의 아나키스트들, 20세기초의 생디칼리스트나 공장평의회 운동가들, 영국의 노동자길드 운동가들이나 유럽의 노동자협동조합 운동가들...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바로 시민자치, 노동자자치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은 필자와 같은 진보연하는 학자들의 탁상공론에 머물거나, 현실에서 실천되더라도 시간적, 부문적,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2,500년전 시민직접자치를 이룬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는 지금은 단지 학문적 연구대상으로만 남아있고, 모어의 구상은 그의 책 제목 그대로 유토피아에 불과했고, 오웬이 신대륙 미국에 세운 뉴하모니 공동체는 그의 사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20세기초의 수많은 노동자평의회는 파시즘의 광풍 속에 모두 분쇄되었고, 유럽의 길드나 협동조합운동도 확장성을 갖기는커녕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우리 해방정국에 잠시 있었던 적산기업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관리기업은 이제 역사속의 사실로만 남아 있다.

그래서 10여년이 넘은 김 대표와 우진교통 구성원들의 도전과 성공은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물론 일부 내부구성원이 보기에는 자신들의 힘겨운 노력에 비해 물질적 보상이 다소 초라해 보일 수도 있고, 학자연하는 이들로부터 민주적 결정으로 인한 지체로 효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고, 이념적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로부터 용공세력의 사회주의적 실천으로 매도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물질적 보상과 효율성보다 월등히 소중한 것이 노동현장에서의 인간 존엄성과 민주주의의 실현이고, 이러한 가치가 이념적 색칠하기로 평가절하될 수는 없다.

최용현 변호사

최근 김 대표는 시민단체와 정의당으로부터 청주시장 후보 출마를 종용받고 있다. 그도 이를 고민중이라며 우진교통 구성원들과 상의하여 결정하겠다고 말한다. 그의 출마는 그 자신의 개인적 욕망이 아니라, 그동안 그와 우진교통 구성원들이 추구하였던, 우진교통의 사례를 통해 터득한 가치와 성과를 다른 부문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의 일환일 것이다. 물론 한 기업에서 노동민주주의를 이룬 것도 눈물겨운 도전의 연속이었겠지만, 그것을 성공시켰다 하더라도, 다른 기업, 다른 영역, 지역사회 나아가 전 사회에서도 똑같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실패한 도전이라도 그것이 없었다면, 인류사회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의 그들의 눈물겨운 분투와 그리고 앞으로의 새로운 도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당신들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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