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세(貰)들어 온 옆집에서 시루떡을 가져 왔다. 손바닥만한 떡조각을 들고 보니 문득 고향에서 먹던 시루떡이 생각난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갈떡이나 고사떡을 하는 날, 문 밖에다 황토흙을 뿌리고 떡시루는 장독간이나 성황당에 놓고서 신에게 원과 한을 풀며 복을 빌기도 했다.
 시루에 찐 떡은 찹쌀떡, 멥쌀떡, 호박떡이었고 떡에 담긴 그 맛도 달랐다. 찹쌀떡은 차진 맛이고 멥쌀떡은 무닐무닐하고도 구수한 맛, 호박떡은 달콤한 맛이라서 좋았다. 떡 그릇은 이웃집 울 너머로 오고 갔으니, 가을은 풍요로움과 기쁨으로 가득했다.
 봄바람 속에 볍씨를 뿌리던 설렘,뙤약볕 속 논에서 김맬 때, 땀 흘려서 맺는 결실을 보며 천리에 순응하면서 살아온 고향 사람들, 그리고 대대로 이어서 사신 조상들을 생각한다. 큰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 눈이 오고 바람이 불어도 떡 먹는 재미로 두 고개를 넘으며 열심히 다녔다.
 이 밤에 떡을 생각하니 문 밖에서 떡을 들고 와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싶을 만큼 그립다.
 어머님이 내 생일이면 떡을 해주시던 그날은 가장 잊지 못한다. 떡을 할 적에는 절구통에다 쌀을 빻아서 가루를 만들고 팥을 삶아서 고물을 만드느라 절구에 찧기도 하며 콩은 볶아서 맷돌에 가는 일로 얼마나 힘드셨을까.
 공부방에 촛불을 켜고 있을 때면, 어머님은 그저 좋아만 하셨고, 부엌으로 가셔서 떡을 찌며 설거지 하는 일에 바쁘셨다.
 이렇듯 힘들게 사셨기에 어머님 이마엔 주름살이 박히셨고 촛불은 자식을 위한 불빛으로 타고 있었나 보다.
 6·25 사변 때다. 어머니는 생활이 어려워도 자식을 굶기지 않게 하려고 쌀 몇 되는 아무도 모르게 비상용으로 보관하셨다. 피난 보따리를 들고 가는 이른 아침, 언제 만날지 모르니 찹쌀밥을 먹고 가자며 막 먹으려는데 총소리가 들려와 먹지도 못하고 피신을 하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희생적인 사랑은 가이 없고 영원하리라. / 청주 사랑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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