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 정구철 충북 북부본부장겸 충주주재

충북지방경찰청 / 중부매일 DB

충북지방경찰청의 감찰을 받던 충주서 소속 30대 여경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경찰조직 내부가 시끄럽다. 자체 조사에 나선 경찰청이 강압적인 감찰이 있었던 사실을 인정하자 그동안 불만을 억누르고 있던 많은 경찰관들이 경찰 내부통신망을 통해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급기야 전·현직 경찰관으로 구성된 온라인 모임인 '폴 네티앙'은 SNS를 통해 조만간 충북지방경찰청 감찰 담당자와 지휘부를 직권 남용과 강요, 협박 등으로 집단 고발하겠다고 예고했다.

현직 경찰관들이 경찰 지휘부를 고발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충북경찰청은 지난 12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감찰 외근직원 전원 교체를 결정했지만 경찰관들의 분노는 식지 않고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숨진 여경의 근무태도 등을 제보한 익명의 투서에서 시작됐다. 익명의 투서는 처음에 충주서 청문감사관실로 접수됐고 청문감사관실은 자체조사를 벌여 음해성이 짙고 사안이 경미하다는 판단으로 내부종결 처리했다.

하지만 해당 투서는 다시 충북지방청으로 접수됐고 여기서 강압적이고 무리한 감찰을 실시해 문제가 됐다. 최근 들어 경찰 내부에서는 "과연 누가 투서를 했느냐"를 놓고 각종 억측이 오가며 뒤숭숭한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투서자가 숨진 A경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일 것"이라거나 "평소 A경사와 악감정이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등 투서자에 대한 추측을 좁혀가고 있다.

근거없는 추측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자칫 애꿎은 제 3의 피해자가 나올까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경찰서 직원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등 조직 내 분위기가 흉흉해지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수사를 통해 억울한 죽음으로 몰고가게 한 투서자를 색출해내야 한다"고 강경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불거진 뒤, 익명의 투서를 감찰의 근거로 인정해야 하는지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10여 년 전, 당시 새로 부임한 충주경찰서장이 자신의 책상서랍 속에서 무기명 투서 한무더기를 꺼내 내게 보여줬다. 충주가 고향인 나로서는 심하게 낯 뜨거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는 "무기명 투서는 음해성이 많아 읽은 사람이 자칫 특정인물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바로 머릿 속에서 지워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남을 음해하고 헐뜯는 사람들이야 말로 가장 비열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구철 충북 북부본부장겸 충주주재

무기명 투서는 투서자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른 일방적인 주장과 음해성이 많은 편이다. 이 때문에 자칫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심하면 이번 사태처럼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또 지역사회나 조직 구성원들의 화합에도 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를 아는 어느 누군가가 나를 음해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남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익명을 무기삼아 근거없이 남을 음해하고 난도질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로 봐야한다. 정의감이나 사명감에 따른 제보는 이름을 밝히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경찰청은 이번 기회에 익명의 투서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익명의 투서를 감찰이나 수사의 근거로 삼지 말도록 강제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경찰이 익명의 투서를 근거로 수사나 감찰을 실시하면 범죄행위에 대해 정당성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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