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이재한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 클립아트 코리아

올 하반기 들어 원·달러 환율이 하락추세를 보이더니, 11월이 되면서 또 다시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원화가치가 더 올라갈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1월 21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4.8원 내린 1095.8원에 마감했는데, 이는 종가기준으로 작년 9월8일(1092.6원)이후 1년2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이처럼 환율이 하락을 거듭하는 데는 원화 절상에 대한 기대감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원·달러 환율 하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그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다. 한국 등 주요국과의 무역역조를 강조하고 환율조작국이라는 등의 공격이 해당 국 정부를 움츠려들게 하고 이것이 원화강세로 이어진 것이다.

예전 같으면, 이러한 원화강세가 주로 수출위주의 대기업에 피해가 가고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에는 오히려 호재라는 인식도 있었다. 원·달러 환율을 기준으로 한 동전의 양면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누어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내수시장 침체 등으로 대부분의 기업이 수출을 지향하고 있고, 실제로 수출중소기업의 수가 9만개 이상이 되는 현실에서는 동전의 양면이 변하고 있다. 바로 수출 중소기업과 내수 중소기업이 동전의 한 쪽 면씩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러한 이유로 환율 변동에 따라서 중소기업 내에서도 웃는 쪽과 우는 쪽이 나누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부도 환율정책을 어떻게 가지고 가야할지 정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렇듯 동전의 양면이 명확해진 상황과 정부의 개입이 감시를 심하게 받는 처지에서는 우리 중소기업 자체의 준비가 매우 중요한데, 우리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들려온다.

지난 2월 중소기업청의 조사를 통해, 중소·중견기업이 이러한 문제에 얼마나 취약한지 확인되었다. 중소기업은 10곳 중 9곳 가량, 중견기업은 7곳 가량이 '환율 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 출범 이후 확대되고 있는 환율 변동성이 이들 기업의 수익성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해당 조사에서 중소기업의 87.3%는 급격한 환율 변동에 대한 대응책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중견기업 66.2%도 속수무책인 셈이다.

산업계에서는 달러당 환율이 1100원대가 무너지면 상당수 수출 중소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해 왔는데, 최근 이 마지노선이 무너져버렸다. 중소기업은 수출입 규모가 작아 손익분기점 환율이 대기업보다 높은 편이다. 달러로 번 돈을 원화로 바꿀 때 환율이 높을수록(원화 가치가 낮을수록) 환전 이익이 커지는데 원화 가치가 올라가면서 발생하는 손실을 흡수할 여력이 큰 기업보다 적다는 의미다. 특히 부품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은 기존 해외 거래처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적자 수출'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위험성이 크다.

그러나, 중소기업에게 환율리스크 헤징 수단을 강요하기에는 과거의 경험이 너무 쓰다.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키코(KIKO)'의 아픔이다. 2008년말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 변동 위험에 대비한 파생금융상품인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이 큰 손해를 보고 도산 위기에까지 몰리면서 아직까지 '트라우마'에 갇혀 있다. 키코 사태를 통해, 우량 중소기업 여럿이 도산하는 등 문제가 발생하면서, 중소기업이 환위험에 대응하는 것에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중소기업들이 이처럼 환율 변동에 따른 손익을 운에 맡기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한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하지만 중소기업이 더 이상 이러한 방식으로 운에 맡길 수는 없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트럼프행정부 출범이후 환율변동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손실의 규모가 급격히 커질 위험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기관의 환 위험 헤지 상품에 가입할 때 내는 보험 수수료는 아까운 비용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또한 은행이나 보험사들이 수출 규모가 작고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에게는 깐깐하게 따져 수수료를 높게 책정하기도 하는 관행 때문에 중소기업이 기피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시에 도산 등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수출 계약시에 환율변동에 따른 가격변동에 대한 조항 등을 포함하는 등의 차선책도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준비만이 중소기업이 동전의 어두운 쪽 면에서도 살아남아서 다음 기회에 밝은 쪽 면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동전의 어두운 쪽에서도 밝은 쪽을 기대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바로 어두운 때를 준비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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