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봉순 충북도 치수방재과장

"시간은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속도로 지나간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2017년이 저물어 가는 지금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변화무쌍한 재난들이 다양한 무게감으로 부족한 필자의 몸과 마음을 흔들고 지나간 한 해였다. 자연재난 업무를 다루는 필자에게는 사시사철 가슴조리는 긴장감을 늦출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지난해에는 장기간 이어진 가뭄과 폭염, 느닷없는 9월12일 경주지진으로 동분서주 했었는데, 올해는 1, 2월 대설과 한파, 영농 철 가뭄에 이어 시간당 90㎜를 상회하는 기록적인 폭우로 도내 일부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혹시나 가을 태풍에 또다시 피해를 입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 하다 보니 어느덧 지금은 겨울철 재난대책에 매달려 있다.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던 7월16일 내린 폭우는 지난 22년간의 강우량 기록을 갈아치우며 청주를 비롯한 5개 시·군에서 547억 원이라는 많은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고, 국지적으로 단시간에 폭우가 집중되면서 교통이 마비되고 농경지와 주택침수의 속출은 물론 산사태와 하천범람 등으로 7명이 사망하고 2천539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이에 충북도에서는 우선 침수지역의 배수처리와 도로, 전기, 수도, 가스 등 라이프라인부터 응급복구를 신속하게 추진하는 한편 이재민을 안전한 대피시설로 안내하고 각종 구호물품을 배부하는 등 정신없이 뛰어 다녔다. 무엇보다도 전국 각지에서 찾아주신 7만5천여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내 일같이 도와주신 덕분에 수재민들이 빠른 시일 안에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되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그러나 현실적이지 못한 지원기준 때문에 공동주택과 화물자동차 침수 피해자들은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 되었고, 응급복구 작업 중에 사망한 작업자가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했다. 또한 일부 지역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도 각종 혜택이 주어지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불합리한 제도에 대해 근본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사님의 특별지시에 따라 법령과 지침을 개정하기 위해 중앙정부를 설득하고 지역 국회의원과 장관님을 찾아 수차례 도움을 청한 결과, 결국 지난 11월2일 제16회 국정현안조정회의에서 '사람 중심의 재난지원체계 개선방안'이 최종 확정, 충북도에서 건의한 내용이 정부정책에 모두 반영되었다.

신봉순 충북도 치수방재과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피해는 소급 적용할 수 없어 우리 도에서는 의연금을 특별 배분하고 청주시 조례를 우선 개정하여 공동주택 침수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화물자동차 침수 피해자에게도 약간의 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한다. 국민의 의식수준은 날로 높아지고 삶의 방식은 복잡, 다양해 질 것이 분명한데 앞의 예와 같이 우리가 다루는 법과 제도는 항상 뒤쳐저 있는 것 같아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역할에 따라 시간의 체감속도가 다양하듯 도민이 처한 상황, 특히 재난을 당한 개개인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인익기익(人溺己溺)의 자세로 '깔맞춤'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지방행정의 본질이고 공무원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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