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제2생명과학단지내 '봉산리 옹기가마터' 결과 발표
한국선사문화연구원측, "19세기말~20세기초에 해당" 근거 제시
옹기장측, "200년된 시설 아니라는 감정결과 신뢰 못해" 반박

오송 봉산리 가마 발굴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 내 옹기가마터를 둘러보고 있다. / 이지효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 조성 과정에서 논란이 된 봉산리 옹기가마 발굴 조사 결과 100년 전후의 시기에 조성돼 문화재적 가치는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옹기가마 소유자인 충북무형문화재 제 12호 옹기장 박재환 선생과 전수자 박성일씨는 신뢰할 수 없는 결과라며 반발하는 등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충북개발공사가 의뢰해 시굴 조사를 맡은 한국선사문화연구원(원장 우종윤)은 28일 옹기가마터가 있는 청주시 오송읍 봉산리 현장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가장 오래된 옹기가마 조성 시기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이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 봉산리 옹기가마터에서 발굴된 유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이지효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은 "현재 옹기가마터 5, 6호기 옹기가마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1~3호 옹기가마는 1950~1970년대, 4호 옹기가마는 1970~1980년대로 3개 시기로 구분된다"며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여러 특징으로 판단한 옹기가마 운영시기와 일치한다"고 전했다.

이종민 충북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홍익대에서 발간한 일제시대에 조사한 도기 관련 책에 보면 청주지역에 도기공장으로 운영했던 곳이 3군데가 나오는데 이 중 가장 빠른 지역도 1914년으로 이곳과 연관이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 이전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 관계자는 "6기의 옹기가마터는 가마구조에 따라 단실요와 연실요로 구분되고 있다"며 "연실요는 20세기 이후 근대 가마가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조성됐으며, 옹기가마의 경우 1950년대에 이르러 자기가마와 절충해 조성한 것으로 경북 영덕에 남아있는 가마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곳에서 발견된 구석기 문화층은 총 6개의 문화층 중 5개의 문화층이 확인됐으며 구석기 유물은 318점으로 3, 6문화층에서 가장 많은 수량의 석기가 확인됐다.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 내 토지보상은 모두 끝났지만 아직 소송중인 가마 터. / 이지효

그러나 옹기장 전수자 박성일씨는 반발했다. 박씨는 "충북개발공사가 1968년 봉산리 옹기가마터 항공사진에 대해 감정한 결과 봉산리 200년 옹기가마 시설이 아니라고 추정된다는 것은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옹기가마 현장은 토지 보상이 모두 끝난 상태지만, 가마 보상을 둘러싼 소송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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