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때는 기원전 중국 전국시대다. 장소는 진(秦) 나라 남문(南門)이다. 느닷없이 장대가 세워졌다. 국가 명의의 방(枋)도 붙었다. "이 장대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황금 열 덩어리를 주겠다." 무겁지 않았고 깊이 박히지도 않았다. 남녀노소 쉽게 옮길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났다. 장대는 그대로 있었다. 황금 열 덩어리를 준다는데도 말이다. 며칠 후 방이 바뀌었다. "이 장대를 북문으로 옮기면 황금 쉰 덩어리를 주겠다." 사람들이 비아냥거리며 그냥 지나쳤다. "장대 하나 옮기는데 황금 쉰 덩어리를 준다고, 허 참, 정신 나간 놈인가? 믿을 수 없지" 늦은 저녁, 주막서 나온 백수가 생각 없이 장대를 뽑아 어깨에 메고 북문으로 가 바닥에 세웠다. 그는 그냥 갈 길을 갔다. 이 사실이 관가(官家)에 알려졌다. 황금 쉰 덩어리가 깔끔하게 백수에게 전달됐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니, 그 방이 진짜였구나.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못할 벼슬아치들이었는데, 정말 약속을 지키다니, 아하! 이럴 수가?"

도대체 장대를 옮기면 황금을 주겠다고 한 사람이 누구며 왜 그랬을까? 한 낫 장대를 옮기는데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이다니, 이해 못할 일이었다. 그 주인공은 진 나라 좌서장(左庶長:12등급 중 6등급 벼슬) 공손앙이다. 그는 원래 위(衛) 나라 왕의 서자(庶子)다. 거기서 뜻을 펼칠 수 없어 위(魏) 나라로 망명, 한 재상의 가신이 됐다. 거기서도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급기야 진나라로 왔다. 효공에 의해 등용, 진의 천하통일의 초석을 마련했다. 이 공로로 그는 상(商) 지역을 다스릴 자격이 주어졌다. 그 후 공손앙을 상앙(商?)이라 불렀다. 상앙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했는가? '나라는 절대 백성에게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후 진 백성은 나라를 철저하게 믿었다. 국가와 백성 간 믿음이 생겼다. 이런 믿음 속에 진은 140여 나라에서 살아남은 7 나라를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로 만들었다. 상앙의 깜짝 이벤트가 없었다면 백성은 끝까지 나라를 믿지 않았을 테니 천하통일은 아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떠한가? 위정자들은 백성들과의 약속을 지키는가? 말이다. 그들은 선거 때가 되면 무수한 공약들을 쏟아낸다. 하늘에 구멍이 나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확언하고 또 확언하다. 우리는 '입술에 침이라도 바르지'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믿어보자며 그 유(類)의 하나를 선택한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의 공약은 점차 공약(空約)으로 전락된다. 약속을 하는 것도 깨는 것도 모두 그들 마음대로다. 참으로 뻔뻔하다. 우리 위정자들의 본모습이 아닐까? 공약 개발과 공표는 정치권력 획득을 위한 적극적이고 교묘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런 정치 풍토는 국민들이 그들의 수단에 속는 것을 익숙하게 한다. 부지불식 그렇게 된다. 그들에게 정치적 약속은 단지 개발과 공표만이 중요하다. 약속 준수 여부는 정치권력을 얻은 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지킬 수도, 그냥 파기할 수 도 있다는 얘기다. 약속 파기의 원인을 혼란스럽게 급변하는 정국(政局)으로 몰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국민들은 위정자들을 믿지 않는다. 소중한 한 표로 그들에게 정치권력을 위임했음에도 그렇다. 사람들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회피하고 싶어 한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하다. 신문 정치면을 기피하고, 방송 정치 뉴스를 외면하다. 그냥 보고 들으면 짜증난다. 위정자 간의 막말과 불손한 행위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보혁(保革)과 좌우 갈등 역시 심하다. 이제 그만 할 수 없을까? 우리 정치사엔 봉합(縫合)이란 단어가 없는가 보다. 아무리 위정자들이 거짓말쟁이라 해도 너무 하다. 차라리 '爲政者'가 아닌 '위(僞)政者'가 더 적합하다. '僞'는 '거짓, 속이다'는 뜻이다. 우리 정치는 위정자와 예비 위정자의 소란스러운 잔치가 맞다. 국민들은 잠깐 들러리에 불과하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위정자들! 약속을 지켜라. 지키지 못 할 약속은 하지 마라 .인기영합주의, Populism에서 벗어나라. 그래야 국민들은 나라를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국론의 지리멸렬로 나라가 위태롭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의 고사가 있다. 미생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리 밑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았다. 폭우가 왔다. 미생은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 죽었다. 약속(約束)은 '실로 단단히 묶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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