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윤희 수필가

/ 클립아트코리아

찰방찰방 아이들 웃음/ 맑은 물방울로 튕겨 오르는/

잣나무골 옛날장터 소금소/ 산골 물 흘러흘러 소(沼)를 이루고/

장돌뱅이 삶의 애환 어루만져/ 시름 달래주던 곳//

소달구지, 지게 짐에 실어와 /펼친 옛 소금장의 추억이/

아름다운 결로 흐르는/ 청정한 물결 장터 소금소는/

이제, 세상의 때를 씻고/소중하고 정제된 소금으로/

나를 바로 세우는 곳이다.//

누군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황금과 소금과 지금이라고." 모두 금이다. 모두 소중하다.

어느 날 문득 지인에게서 '소금소'의 전설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어린 시절 소금소 바로 아래에 놓인 섶다리를 건너 초등학교를 다녔으니 말은 들어 알고 있던 터였지만 담겨 있는 뜻이야 생각해 본 일이 없다. 새삼 무슨 일인가 했다. 그는 까마득히 잊고 있던 소금소의 전설을 끌어내 그곳을 추억이 머무는 장소로 가꾸어 갔으면 한다.

소금소는 백곡천을 이루는 개울물이 장터마을을 끼고 흘러들어 깊은 소(沼)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개구쟁이들이 마음껏 헤엄을 치고 놀 수 있는 맑은 물웅덩이다. 국내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충청도 내륙, 그 중에서 가장 오지에 속한 백곡면에 '소금소'라니….

이와 관련하여 두세 가지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하나는 폭우가 몹시 쏟아지던 어느 해, 미처 갈무리 하지 못한 장터의 소금 대량이 시냇물로 흘러들면서 그곳에 깊은 웅덩이가 생겼다고도 하고, 맑은 개울 바닥에 사금이 많아 그리 불렸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는 2일, 7일 열리는 백곡의 장터가 소금장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앞개울을 소금소(沼)라 불렀다는 것이다. 물물교환이 이루어질 때부터 오일장이 섰던 바로 옆이다. 충남 아산만 둔포 일대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소달구지 또는 지게 짐으로 운반하여 엽둔 고개를 넘어 이곳 돌고개 장터에 와 펼친 것이다. 진천은 물론 증평, 괴산, 음성사람들까지 이곳 장마당을 이용하였다 하니 그 규모와 유명세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된다.

협탄령이라 불리기도 하는 엽둔고개는 경기도 평택, 성환을 지나 충청도를 잇는 험한 고개다. 도적들이 늘 고개 목을 지키고 있어 행인들이 물건이나 엽전을 털리기 일쑤였다. 하여 엽돈재로 불리기도 한다. 소금장꾼들은 험준한 고개를 어렵사리 넘어와 장을 펼쳤으니 그 노고가 얼마이겠는가. 장터 앞 개울물은 땀에 전 이들이 풍덩 뛰어들어 치열한 삶의 피로를 풀어내기에 그만이었을 것이다.

어느 것이 정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오랫동안 소금장터와 함께한 물웅덩이는 장돌뱅이들을 비롯한 우리네 서민들의 시름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달래주는 청량제가 되었으리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금은 그 어떤 것보다 귀한 물건이었다. 오죽하면 소금(小金)이라고까지 하며 돈을 대신했겠는가. Salt(소금)라는 단어 자체가 Salary(월급)에서 연유한 것만 봐도 가치를 알 수 있는 일이다. 중국에서는 아예 소금을 동전처럼 틀에 넣어 굳혀 황제의 문양을 새겨 화폐로 사용했다고 한다. 염화(鹽貨)다.

소금이 어찌 돈만 뜻하랴.

정육면체의 투명한 결정체, 육안으로는 식별이 안될 만큼 작은 물체가 사람의 몸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 본초강목에서는 "금은 달고 짜며, 찬 것으로 독이 없다" 하여 귀히 여겼다. 고조선 시대부터 이미 소금을 생산한 우리 조상들은 금전 그 이상의 가치로 평가를 하고 있었다.

지금, 장터마을 사람들은 사라져버린 옛 장마당의 정취를 다시 살려보려 힘을 모은다. 고무신 가게, 기성복 상회, 메리야스, 잡화상점, 주막, 국밥집이 터 잡고 있는 곳에 쩔렁쩔렁 가위소리 높이는 엿장수, "뻥이요!" 요란하게 외치는 뻥튀기 아저씨 어깨 너머로 고소하게 풍겨오던 튀밥 냄새를 그려내고 싶은 게다.

해종일 소금소에서 입술이 새파래지도록 물장구치다가, 검정 고무신 한짝 뒤집어 배 만들어 띄우던 아이들, 피라미, 송사리처럼 떼로 몰려다니며 모래무지 움켜잡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웃음 사라진 빈 개울가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싶은 게다. 삭막해진 정서, 오염된 현실의 때를 씻어내고, 부패로부터 저를 지킬 수 있는 정제된 소금, 돈보다 더 귀한 가치로 평가 받을 수 있는 자신을 바로 세우고 싶은 바람이 일렁일렁 나를 흔든다.

김윤희 수필가

약력

▶충북 진천 출생 ▶2003년 월간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대표에세이문학회, 충북수필문학회원, 진천문인협회 회원 ▶생거진천신문 편집위원 ▶충북문인협회 편집부장 ▶前 진천군의원 ▶저서: 수필집 '순간이 둥지를 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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