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정미 충북여성재단 연구위원

3.8 세계여성의 날인 8일 서울 명동 거리에서 미투운동 동참을 뜻하는 검정색, 보라색 의상을 입은 한국YWCA 연합회원들이 미투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피켓을 들고 있다. 2018.03.08. / 뉴시스

최근 미투운동(#MeToo)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역작용으로 펜스 룰(Pence Rule)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펜스 룰은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2002년 한 인터뷰에서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을 소개한 데서 유래한 표현으로 남성들이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행동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여성들과 개인적 교류나 접촉을 기피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펜스 룰의 대응 논리를 따라가 보면 펜스 룰의 행동전략은 생각보다 넓게 퍼져있다. 펜스 룰은 기득권 집단이 사회적 약자 집단의 문제제기를 수용해서 자기 자신과 조직을 변화시키는 대신 문제 제기하는 상대를 배제하는 전략으로 변화를 저지하는 행동이다. 몇 년 전에 여성 관리자의 직장 내 적응과 성장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었는데, 연구과정에서 만난 여성들은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펜스 룰 행위를 전해주었다. 회사에서 성폭력 사건 가해자에 대한 징계수준을 높여가고 여성들의 고발이 늘어나자 남자직원들이 회식자리에 여자 직원을 배제하는 경우들이 늘었다. 이런 문화가 팽배해지면 여직원들은 직장 내 정보에서 소외되고, 조직 내 네트워크 자원이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남자상사가 불륜으로 의심받을 것을 피하기 위해 여자 후배를 후임으로 키우지 않는 행위 역시 여성을 배제하는 대표적 방식이다. 육아휴직 사용률이 높아지면서 여성을 부서 배치나 채용 단계에서 배제하는 경향 역시 펜스 룰의 한 유형이다. 일부 관리자들은 여성 직원을 출산으로 업무 공백을 발생시킬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인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채용 단계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경향은 중소기업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의견이 있다. 중소기업은 규모가 작아서 직원이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경우 업무 분담이나 업무 대체가 더 어려워 애초에 여성을 채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미투운동이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과, 우리 문화, 조직의 관행을 성찰하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방관자였고, 때로 가해자였고, 때로 불합리한 문화가 주는 이익에 편승한 사람이었을 수 있다. 육아휴직의 확산이 제기하는 시대적 요구 역시 성역할 고정관념, 기업의 인력 운영 방식, 일 중심의 기업 문화, 장시간 근로관행 등 노동 문화 전반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출산과 육아가 여성에게 차별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펜스 룰은 변화를 저지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차별 행위이다. 이런 방식의 행위가 심각한 이유는 차별을 은폐해 문제를 직접적으로 입증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정미 충북여성재단 연구위원

정부의 대책에도 최악의 청년 실업이 계속되고 있다. 취업 준비를 하는 20대 여성들을 만나보면 채용 과정에서 여성 지원자에 대한 기피와 배제를 절절히 호소하는 경우들이 있다. 누군가는 '성별을 바꿀 수만 있다면 바꾸고 싶은 심정'이라고도 말한다. 충북 역시 청년 여성 고용의 취약성에서 예외가 아니다. 충북 20대 비경제활동여성의 약 20%는 취업을 희망하지만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실망실업자이다. 이들은 '전공이나 경력에 맞는 여성 일자리가 없다'는 좌절을 토로한다. 펜스 룰과 같이 여성을 배제하는 대응 방식이 청년 여성의 고용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할 것이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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