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는 조선후기 혜원(惠園) 신윤복(申潤福)과 더불어 쌍벽을 이룬 대표적 화가다. 두 화가는 1세기 후에 태어난 영화 취화선의 주인공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과 더불어 조선조 삼대화가, 삼원(三園)으로 불린다.
 당대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로 불리는 표암(豹庵) 강세황(姜世晃)을 사사(師事·스승으로 섬김)한 단원은 도화서(圖畵暑) 화원(畵員)으로 임금, 왕실의 그림을 그리는 어진화가(御嗔畵家·궁정화가)였으나 이외에도 산수화, 풍속화, 불화(佛畵), 신선도, 초상화에도 능하였다.
 그러니까 단원은 특정 장르에 머문 것이 아니라 그림의 모든 분야에 능통한 만능 화가였다. 그의 그림은 혜원과 대조를 보이며 특히 풍속화 분야에서 백미를 이뤘다.
 혜원은 주로 양반 등 귀족층을 대상으로 그림을 즐겨 그렸는데 단원은 이보다 서민의 삶을 택했다. 단원의 대표작중 하나인 ‘서당그림’을 보면 글을 읽다 훈장에게 매를 맞고 우는 아이의 모습이 해학적으로 묘사돼 있다.
 아이가 소를 몰고 내를 건너는 모습을 그린 도우도(渡牛圖)를 보면 여름 물난리에 농촌에서 흔히 겪던 모습들이 흥건히 배어나온다. 소는 떠내려가고, 아이는 소꼬리를 붙잡고 허우적댄다. 장마비에 급박한 농촌상황이 어쩌면 그렇게도 여유롭게 표현되었는지 범인의 안목으로서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삼현육각 장단에 춤을 추는 무동(舞童)의 춤사위는 휘몰이로 몰아치며 절정에 이른다. 그 신명바람이 금방 화폭을 박차고 뛰어 나올듯 하다. 백중날에 벌어지는 씨름판에서는 장정들이 서로 힘을 겨루는데 한 아이는 관중을 대상으로 한가롭게 엿을 판다.
 농기구를 벼리는 대장간도, 곡식을 갈무리하는 타작도, 말 편자박기, 기와 이기 등은 모두 민초들과 관련된 삶의 색채언어다. 시공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서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게 단원 풍속도의 한 특징이다.
 그는 풍속도에만 집착한게 아니라 산수화에도 절정의 재질을 보였다. 배경을 생략하고 간결, 소탈하게 풍경을 묘사하는 그의 산수화는 여타 산수화와 또다른 맛을 준다.
 단원이 44세 되던해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을 그렸는데 이것이 ‘금강산 사군첩(四郡帖)’이다. 정조의 사랑이 각별했던 그가 궁정화가에서 1791년 12월 부터 1795년 1월까지 연풍현감에 재직한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러한 지방근무 조치는 산자수려한 연풍과 문경, 그리고 단양팔경을 그리라는 정조의 특명이 있었을 것으로 관련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그가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그린 도담삼봉, 사인암 등 ‘단양팔경도’는 지금까지 전한다.
 서민의 애환을 즐겨 형상화한 그림이 말해주듯 그는 연풍현감으로 근무하면서 민초들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어려움을 달래는 목민관(牧民官)이었다. 최근 연풍 현지에서 ‘김홍도 연풍현감 선정비’ 건립을 추진하는 것도 이같은 예혼(藝魂)과 애민정신을 기리기 위함이다. 이로보면 역시 예술은 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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