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군이 오는 2005년까지 30억원을 투자, 국립공원 속리산 입구 일대에 전국 제일의 ‘소나무 숲’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보은 속리산 일대에는 ‘정이품송’(103호), ‘서원리 소나무’(104호), 백송(352호) 등 3개의 천연기념물이 존재하고 있다.
보은군은 이들 자원을 활용, 5㎞ 구간에 자연학습과 휴양 기능을 가진 ‘소나무 숲’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소나무를 대표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속리산 정이품송이다. 정이품송은 식물로는 흔치않게 왕(세조)에 얽힌 전설을 지니고 있다.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였다. 세조가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랫가지에 걸릴까 염려하여 "연(輦)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올려 어가(御駕)를 무사히 통과하게 했다. 이런 연유로 세조는 이 소나무에 정2품(지금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다’.
과연 그럴까.
그리이스 신화가 그렇듯이 전설이나 신화에는 당시 정치 지형을 반영하는 통치 이데올로기가 교묘하게 장착된 경우가 많다.
일부 학자들은 정이품송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학자들이 보고 있는, ‘정이품송이 스스로의 가지를 번쩍 들어올린 사연’은 이렇다.
익히 알다시피 세조(재위기간 1455~1468)는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 세조는 이 과정에서 사육ㆍ생육신을 저항을 받는 등 극심한 정통성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세조에게는 자신의 정통성 시비를 잠재울 수 있는 어떤 계기가 필요했다. 학자들은 정이품송 전설이 이런 필요성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이품송 정도의 수세(樹勢)를 가진 소나무는 영물이다. 영물은 하늘과 감응을 한다. 그런 영물이 세조를 알아봤다. "연걸린다" 말하자 가지를 스스로 번쩍 들어올리지 않았는가. 이는 하늘이 세조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식물이 벼슬을 하는, 웃지못할 전설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물론 세조 자신이 이같은 전설을 직접 창작ㆍ유포한 것으로는 보여지지 않고 있다. 주변 머리 회전이 빠른 참모가 지어바친 것으로 보인다.
단종은 일국의 왕에서 대군으로, 다시 서민으로 신분이 떨어졌다. 급기야 자살을 끊임없이 강요받은 끝에 육지고도인 영월 청령포에서 죽어갔다.(자살, 타살 여부는 불분명)
단종을 죽인 세조는 이와 반비례, 대군(수양)에서 왕으로 신분이 작위적으로 상승했다. 어쩌면 정이품송은 세조와 단종이 벌인, 골육상쟁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역사는 절대권력이 존재하면 그 주변에는 반드시 아부ㆍ아첨꾼이 파리떼처럼 들끓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제3 공화국의 박정희, 중세 조선의 세조시대가 이런 시기에 해당한다.
물론 이같은 역사추리가 정이품송의 천연기념물적인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정이품송이 지니고 있는 식물적인 가치는 그것대로 보호돼야 한다.
다만 위정자의 ‘우민화 이데올로기’를 꿰뚫어 보고 있을 때, 역사는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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