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단토, 앤디워홀 '브릴로 박스'.뒤샹 '샘'에 의문
시각 아닌 인식, '철학적 사유'가 개입되어야만 구분

Walker Evans-Tenant Farmer's Wife. 1936 (좌) Sherrie Levine-Untitled(After Walker Evans), 1981 (우)
Walker Evans-Tenant Farmer's Wife. 1936 (좌) Sherrie Levine-Untitled(After Walker Evans), 1981 (우)

필자는 지난 연재에서 워커 에반스의 유명한 말을 인용했다. 만약 필자에게 워커 에반스의 유명한 말을 차용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세리 레빈의 '~이후'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내 '머리'를 교육시키고, '머리'가 필요로 하는 '머리'의 굶주림을 유지시키려고 거리로 나간다. 내 '머리'는 굶주렸다." 

여러분께서 이미 감 잡으셨듯이 필자는 에반스의 말 중에서 '눈'을 '머리'로 수정해 놓았을 뿐이다. 왜냐하면 세리 레빈의 '~이후' 작품은 '눈'뿐만 아니라 '머리'로도 보아야만 하기 때문다. 만약 당신이 레빈의 '~이후' 작품을 워커 에반스의 사진처럼 '눈'으로만 보면 단지 '도용'한 사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문득 아서 단토(Arthur Coleman Danto)의 '예술의 종말(The End of Art)'이 떠오른다. 1964년 단토는 뉴욕의 스테이블 화랑에서 전시된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Brillo Box)'(1964)를 보고 20년 후인 1984년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다. 도대체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어떤 점에서 '예술의 종말'을 고하는 작품이란 말인가? 단토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단토 왈, "왜 상점에 있는 브릴로 박스는 예술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고, 워홀이 만든 브릴로 박스는 예술이라고 불리는가?" 왜냐하면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상점에서 판매하는 '브릴로 박스'를 재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머시라? 도대체 '브릴로 박스'가 무엇이냐고요? '브릴로 박스'는 1960년대 당시 '미국인' 가정집에 사용된 세제(를 담는 박스)였기 때문에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포장박스였다. 

그런데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슈퍼마켓에 있는 '브릴로 박스'를 모델로 삼아 같은 크기로 제작한 다음 박스 이미지를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한 것이다. 따라서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얼핏 보기에 슈퍼마켓의 브릴로 박스와 같아 보인다. 따라서 그들 사이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볼 경우 별 차이가 없다. 

그럼 무엇으로 그들 사이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까? 그들 사이의 차이는 시각이 아닌 인식, 즉 '철학적 사유'가 개입되어야만 구분이 된다는 것이 단토의 논지이다. 이를테면 슈퍼마켓에 있는 '브릴로 박스'와 워홀의 '브릴로 박스'의 차이는 '눈(시각)'이 아니라 '머리(인식)'으로 알 수 있다고 말이다. 따라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은 '예술 자체의 죽음'이라기보다 차라리 '시각예술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단토가 주장한 '시각예술의 종말'은 워홀의 '브릴로 박스'보다 47년 전에 출현한 뒤샹의 '샘'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상점의 소변기와 전시장의 소변기 사이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볼 경우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으로 그들 사이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 사이의 차이는 시각이 아닌 인식, 즉 '철학적 사유'가 개입되어야만 구분 가능하다.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뒤샹의 레디-메이드 '이후'가 되는 셈이다. 왜냐하면 워홀은 슈퍼마켓에 있는 '브릴로 박스'를 전시장으로 자리바꿈한 것이 아니라 똑같은 형태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만약 워홀이 슈퍼마켓의 '브릴로 박스'를 전시장으로 옮겨놓았다면, 그는 뒤샹의 '아류'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독창성을 부여받았다. 

반면에 세리 레빈은 워홀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워커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를 복제해 놓았다. 왜냐하면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여전히 원본/복제라는 이분법이 잔존하지만, 레빈의 '무제(워커 에반스 이후)'는 원복/복제라는 이분법이 해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레빈의 '~이후' 작품에 독창성을 부여해야만 할 것이다.  /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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