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립다는 말
사람이 그립다는 말
  • 중부매일
  • 승인 2018.06.2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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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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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큰 행사가 아니면 잘 만나지도 못했던 때꺼리 아저씨를 얼마 전 뵐 수 있었다. 긴 세월 각자의 환경에서 바쁘게 살다 보니 추억은 희미해졌지만 어려서부터 유난히 나를 귀여워해 주셨던 재미있고 좋은 아저씨로 기억돼 있다.

목소리에 힘이 빠지면 죽은 목숨이라 할 정도로 목청이 크셨던 아저씨는 친정어머니의 고종사촌이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젊은 날의 아저씨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막걸리와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던 아저씨를 우리들은 때꺼리 아저씨로 불렀다. 어른이 되고서야 그 동네 이름이 율지리라고 알게 되었는데 왜 때꺼리라고 불렀는지 지금도 그것은 알 수 없다. 아무튼 우리 형제들에게는 호탕한 때꺼리 아저씨였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안부 인사로 서로의 근황도 이야기하며 반가움을 대신하는데 문득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이제 원도 한도 없다. 젊어서부터 이때까지 살만큼 살았고 해 볼 거 다 해봤어 그런데 딱 하나 이제는 사람이 그립다 사람이 그리워" 절절하게 말씀하시는 그 모습에서 진한 외로움과 고독이 온몸으로 흘러내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고독을 견디어 냈다는 것일 텐데도 사람이 그립다는 그 말이 많이 시렸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귓가에서 맴도는 사람이 그립다는 말. 그 말끝은 내 깊은 뇌리에 아직도 웅크리고 남아있는 외할머니의 잔상을 일으켜 세웠다.

가끔씩 삶이 지치고 문득 떠나고 싶어 질 때면 무작정 고향 같은 할머니 댁으로 향하곤 했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그날도 시끄러운 속을 달래려 무작정 길을 나섰다. 딱히 갈 곳도 없기에 오랜만에 시골에 계시는 외할머니나 뵈야겠다는 생각에 삽작문 앞에서부터 할머니를 목청껏 부르며 들어섰다. 문밖에서 여태껏 오늘은 누가 오려나 약속도 없는 기다림을 그림자로 묶어두다가 갈증을 해소하러 잠깐 집안으로 들어오셨다며 부엌에서 나오는 중이셨다. 바닥 깊은 부엌으로 들어서자 할머니 옆으로 입을 막은 아궁이가 검게 그을린 문신을 드러낸다.

할머니의 일상은 티브이 가까이 앉아 전자파를 쐬거나 삽작문 밖에서 멀리 보이는 신작로를 바라보며 약속 없는 기다림이 전부였다. 우스개 소리를 잘 하셨던 할머니의 말씀이 재미있어서 '맞아 맞아'라고 맞장구를 치면 '때려라 때려'라고 유머 있게 받아치시던 할머니가 세월이 가면서 말수도 줄어들고 웃음도 잃으셨다. 할머니는 볼우물이 깊게 패게 담배를 빨았다가 허공에 깊은 연기를 뿜어내며 잠시 뒤면 있을 작별에 민감하게 반응하셨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가야 되니. 그래 가야 되겠지. 하루 종일 삽작문 밖에서 저기 보이는 신작로만 바라본단다. 오늘은 누가 오려나 그렇게 기다리다가 해가지고 나면 내일 또 기다리면 되지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신작로에 접어드는 자동차마다 할머니의 눈길도 함께 달렸다고 한다. 혹시나 당신이 있는 집의 방향으로 들어오는 차가 아닌가 하는 기대감으로 등 굽은 꼭짓점에 앙상한 뼈마디가 선명하게 둥근 모습으로 앉아 긴 그리움을 늘어뜨리곤 하셨던 할머니. 돌아오는 길은 마치 젖먹이 아이를 떼놓고 오는 심정이 되어 가슴이 아렸다. 장승같이 서서 몇 번이고 손을 흔드는 할머니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멀어져 갔다. 그날 바라본 할머니의 모습은 잊히지 않고 아직도 내 안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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