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기와집
빨간 기와집
  • 중부매일
  • 승인 2018.06.2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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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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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산 아래로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운데 서쪽 낮은 구릉을 베고 고락골이 있다. 마을이 삼태기 모양을 하고 있어 추운겨울에도 찬바람을 막아주고 큰 홍수나 재해도 비켜가는 아늑한 마을이다. 이곳이 나의 고향이다. 동리에서 맨 꼭대기에 위치한 빨간 기와집은 70여 년 동안 흔들림 없이 우뚝 자리 잡고 있다. 붉은 기와로 지붕을 올린 저택은 보는 사람들마다 집안의 기품이 느껴진다 했다. 반세기를 넘었어도 빨간 기와집은 모진 세월을 견디고도 그 위풍이 당당하다. 다만 일꾼들이 기거했던 사랑채만은 닳고 닳아 무너지고 사그라져 당장 보수를 하지 않으면 올 여름 장마에 곧 무너질 듯 위태롭게 보였다. 지금껏 둘째오빠가 고향을 지키며 이 고택 일부를 현대식으로 개조 하였어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시골에 정착하지 못한 오빠 내외가 얼마 전 전답을 정리하여 도시로 떠난 빈집은 그 적막함과 쓸쓸함이 더해왔다.

봉숭아 채송화가 지천으로 피어났던 마당가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참외, 수박, 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렸던 남새밭은 개 망초로 산을 이루었다. 아버지의 삶마저 무색해 진 집, 부자의 상징이었던 저택과 쌀100석이 들어가는 뒤주, 안 밖 마당을 비질하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려야 했다. 사랑채에서 들어오는 작은 문은 세월의 연고에 틀어지고 얇아져 문틀의 나이테는 양각으로 패이고 솟아올랐다. 수많은 장독들이 놓여 있던 뒤꼍에는 손을 대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질 것 같은 빈 항아리 서너 개만이 덩그러니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 성성했던 옛 모습은 온데 간 데 없고 실바람만이 주인이 되어 빈집을 드나들었다.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면 부모산을 바라보며 하루의 날씨를 가름하며 그날의 일정을 계획하셨다. 산머리에 구름 모자를 쓰면 비가오고, 안개가 끼면 무더운 하루를 예견하시어 일꾼들을 다스리셨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했던 시절, 동리사람들에게 품삯 대신 쌀을 넉넉하게 지급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선연하다. 나의 어려운 셈법은 아버지의 작기장을 보고 배웠다. 까맣고 투박한 덮개의 작기장, 그것은 일종의 장부였다. 동리사람들의 성함을 일일이 적고 품 일을 한 날짜와 돈을 빌려주거나 쌀을 빌려 주었던 장부를 신기하게도 재미있게 보았던 것 같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아버지의 후광으로 사방 이십여 리 안에서는 어디를 가나 '빨간 기와집 딸레미' 로 대접해주는 사람들 앞에서 더욱 조신해야만 했다. 과객에게 후한 대접을 하고 흉년에는 빌려간 쌀을 감해주셨던 아버지는 경주 최 부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에는 못 미치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동리사람들에게 조금씩이라도 환원하는 아버지의 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다. 아직도 안방 문틀 위 액자 속에는 부모님 사진이 의연한 모습으로 걸려있다. 옷 주름과 손등의 작은 주름까지도 다가와 주저앉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남긴 삶의 방법과 생활방식을 간직하며 살다보니 누구나 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마음을 품을 수 있었다. 다시 큰 오라버니가 지켜나갈 빨간 기와집은 안동 김씨의 역사를 뒤로하고 새 주택으로 탈바꿈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는 마을을 대표하는 한옥이자 부의 상징이었던 '빨간 기와집'도 곧 사라질 것이다. 여기저기 옛집의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주택의 전경을 사진 촬영했다. 마당을 서성이는 내게 마을 어른신이 다가와 '빨간 기와집 딸'이 왔노라 며 반겨주신다. 고향의 집은 언제나 내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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