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구절초. / 클립아트코리아
구절초. / 클립아트코리아

[중부매일 아침뜨락 김민정] 구절초가 만개하는 가을! 영평사가 구절초에 묻혀있다. 소박하고도 청초한 모습으로 피어나 가을바람에 가녀린 몸을 맡긴 채 하늘거리는 꽃이 있다. 쑥부쟁이, 개미취 ,해국, 들국화, 구절초다. 보는 이의 눈을 아리게 하는 가을꽃이다. 모두가 작고 하얗고 깨끗한 에델바이스를 닮았다. 이맘때면 기억도 아스라한 그 시절, '사운드 오브 뮤직' 명화 속 '에델바이스'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폰 대령의 감미로운 노래 뒤에는 나치를 피해 알프스 국경을 넘어야만 하는 비장함과 절박함이 담겨있어 심금을 울렸다.

절간 진입로에서 시작된 구절초 군락은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과 요사채 뒤편 산비탈에서 절정을 이뤘다. 법당 주변은 온통 구절초 꽃밭으로 보는 이들에게 눈 보시(布施)를 한다. 3만여 평 산비탈을 온통 뒤 덮은 구절초, 이곳에 내가 찾고 있던 풍경이 있었고, 잃어버린 정신적 유산을 되찾은 친근하고 익숙한 내음이 있었다.

박용래 시인은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 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구절초 매디 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이라고 노래했다. 영평사의 구절초는 주지 환성스님이 25년 전부터 평소 꽃을 좋아하는 길에 핀 한 송이 토종 꽃을 옮겨 심은 것이 장군산 산자락 일대를 가득 메우게 되는 시작점이 되었다고 한다. 꽃이 만발하는 이 기간엔 마치 하얀 눈이 내린 듯 장관을 이루며 찾는 이들을 맞이한다. 반짝이는 가을 햇살과 축제의 음악소리가 등 뒤를 경쾌하게 밀어준다. 영평사 안으로 긴 행렬이 눈에 띠였다. 국수를 먹기 위한 긴 국수를 행렬 이었다. 축제기간에는 사찰음식 전시와 시식행사도 열렸다. 점심에는 구절초로 만든 국수를 공양하며 구절초 차도 맛 볼 수 있었다.

법화경에 이런 말이 있다.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모래에 막대기로 부처님의 모습을 그리거나 모래로 탑을 만들어도 이것이 인연이 되어 언젠가는 성불하게 되리라'는 구절이 있다. 마찬가지로 국수공양을 받은 사람들도 언젠가는 불교와 인연을 맺어 수 억겁 후에는 성불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성불뿐 아니라 헌금을 하게 될 양 구절초 국수로 허기를 달랬다.

이날 세종 챔버 오케스트라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공연을 볼 수 있었다. 깊고 중후한 목소리와 풍성하고, 관능적인 음색이 악기 다루듯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성악가들의 노래가 산사를 타고 넘나들었다. 몇 년 전 실내공연장에서 봤을 때와는 다르게 거의 모든 가사가 자막 없이 노래로 이루어지는 데도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마치 알프스에서 들려오는 환상의 하모니로 심금을 울렸다. 구절초로 둘러싸인 둘레길 위쪽 구부능선아래까지 밤나무가 지천이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바람이 휙리릭 불어 올 때마다 땅바닥에 알밤이 뚝 뚝 굴러 떨어졌다. 가끔 밤송이까지 날아와 뜻하지 않았던 횡재를 맞이했다. 산속이 온통 밤나무가 서식하고 있는 걸 보니 공주가 밤의 고장이란 게 실감 났다. 한 톨 한 톨 주워 담다보니 어느덧 한 되박은 족히 되었다. 이 또한 부처님의 공양이 아닐는지, 음력 9월이 되면 갓 피어난 구절초를 사랑과 정성으로 채집해 그늘에 말려 두었다가 시집간 딸이 해산을 하고 친정에 가면 달여 주시곤 했던 구절초, 꽃은 꽃말이 순수, 또 어머니의 사랑이듯이 푸근한 마음을 갖게 한다. 깊어가는 저녁, 지금은 아니 계신 어머니의 마음이 숨어 우는 바람소리로 옷깃을 헤집는다. 영평사 구절초는 꽃과 산사, 그리고 자연과 어우러짐이 내게는 보물로 다가왔다. 이제는 '구절초'하면 영평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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