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세명대외래교수

덕성이용원 가게 안에는 공중전화기가 있다. 김 이발사는 이 공중전화로 지인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 / 김용수
덕성이용원 가게 안에는 공중전화기가 있다. 본이미지는 칼럼과 관련이 없습니다. / 김용수

[중부매일 아침뜨락 이성범] 지난 여름 우리를 힘들게 했던 폭염을 뒤로 제치고 어느새 설악산 첫 단풍 소식이 들린다. 그러고 보니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니 올해도 몇장 남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마음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아 허리가 시려온다.

얼마전 추석명절을 맞아 멀리 나가있는 자녀들이 먼 길을 마다않고 손주녀석들을 데리고 고향집을 단숨에 달려왔다. 얼마나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달력에 자녀들이 온다는 그 날짜에 동그라미를 치고 그것도 모자라 싸인펜으로 또 칠했다. 겉으로는 태연한척 하지만 핸드폰으로 수없이 "오늘 꼭 오는 거지?", "그래 지금 어디냐?" 마치 어린애가 소풍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조바심을 내곤하신다. 마침내 문간에 들어서는 자녀들과 손주 녀석을 보자마자 힘에 부쳐도 손주녀석을 업어보려고 등을 돌려대시는 부모님이시다. 모처럼 사람사는 집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어보이시는 부모님, 주름살위에 환한 미소로 행복이 피어나는 부모님, 하지만 이 즐거움도 며칠이 지나고나니 자녀들은 또 다시 고향집과 부모님을 홀로 두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언가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하는 부모님, 오히려 부모님 더 잡수시라고 실랑이하는 부모님과 자녀들, 못이기는 척하고 다시 부모님께서 주시는 선물보따리를 차에 싣고 손주녀석을 데리고 떠나보내고 돌아서는 뒷모습에 또 다시 부모님의 얼굴에는 석양처럼 외로움이 드리운다.

언젠가 '행복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를 주제로 인근 모 노인대학에 강의를 나간적이 있다. 쉬는 시간에 어르신 몇분에게 "어르신, 자녀 자랑 좀 해 주세요?" 하고 여쭈어 보니 한참 있다가 "많은 자랑거리가 있지만 아주 작은 것 하나 말씀드릴께요, 우리 큰 며느리는 서울에 살고 있는 데 글쎄, 매주 토요일이면 한번도 거르지 않고 꼭 아침10시경 되면 아버님, 잘 계시지요? 불편한 것 없으세요? 하며 전화를 해요. 그러면 내가 받고 그래, 나는 잘 있으니 여기 걱정하지 말고 애비랑 너희 식구들 모두 무고하게 잘 있거라.그리고 손주녀석 이름을 부르며 옆에 있으면 바꾸어 달라고 해서 손주녀석과 수다를 떨다보면 그 동안 외롭고 힘들었던 스트레스가 언제 있었느냐식으로 다 해결됩니다"라며 환한 웃음을 보여 주셨다.

"물론 매달 용돈도 보내주지만 이에 못지 않게 가족들과 대화해야 사람 사는 맛이 난다"며 아주 흐뭇해 하시는 어른신을 뵙고 서로 작은 관심을 갖고 전화 한통이 이처럼 부모님의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이날은 강의를 하러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헹복을 배우려 간 턱이 되었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 비록 몸은 자녀들과 떨어져 있지만 서로간의 전화 소통으로 나도 엄연히 우리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자부심과 또한 자녀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나 또한 가족들과 사랑을 나누고 받고 있다는 자긍심이 생겨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분 들이 고립된 채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 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은 이미 주지하는 바다. 부모님에 대한 작은 관심, 전화 한통이 부모님을 든든히 서가시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부모님을 웃게 만들 수 있는 작은 효도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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