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다도. / 클립아트코리아
다도. / 클립아트코리아

아름다운 시간. 행복한 순간, 한해를 보내며 작년보다는 업그레이드 된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초대장과 알림장을 받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리다 보니 하루도 빠꼼한 날이 없다. 세상일 참견을 왜 이렇게 많이 하고 살았을까. 모 단체의 연말 총회에 갔다. 화려하게 꾸며진 테이블을 보는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지정석에는 아주 작은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네모반듯한 상 중앙에는 아름다운 꽃 속의 빨간 촛불이 나풀거리며 춤을 추고 앙증맞은 유리인형이 드레스차림으로 인사를 하고 있지 않는가. 미리 이런 분위기를 통보 받았다면 그에 어울리는 의상을 차리고 왔을 걸 하는 미안한 마음까지 들게 했다.

관공서에서 이렇게 파티 분위기로 연말 총회를 하기는 처음이다. 총회 자료를 보니 특강으로 '茶(차)란 무엇인가'란 주제가 준비 되어 있었다. 그 제서야 분위기 파악이 되었다. 모두가 품격을 갖춘 분위기에 매료 되어 스스로 대접받는 주인공이 되었다. 홍차 티 파티에 대한 세미나를 듣는다. 6대 차의 종류, 동서양의 차 문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왕실차 문화는 화려하기 이를 때 없었다. 영국의 티타임은 오전 6시 엘리모닝티 남편이 아내에게 차를 대접하고, 7시에는 브렉퍼스트티 아침 식사후 차를 즐기며, 11시쯤 주부들이 잠깐 쉬는 타임에 일레분즈티를 마신단다. 오후 5시에는 에프터눈티를 즐기는데 귀족들이 주로 화려하고 푸짐하게 즐기는 시간이란다. 저녁식사 후 에프터디너티는 초코렛 쿠키를 곁드린 위스키브랜디를 마시는데 주로 남성들이 즐긴다고 한다. 잠자기 전 나이트티는 따끈한 우유를 마신다는데 영국 사람들은 온 종일 차와 함께 생활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이런 표현을 해서 미안 하지만 마치 흡연자들이 중독에 걸려 시시때때로 구름 과자를 즐기듯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다도를 5년 동안 배웠다. 2년여 동안 실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기본예절과 역사를 습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조급하던 성격이 차분해지고 빨리빨리에 길 드려진 일상이 차분해 지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게 했다. 차 공부는 끝이 없었다. 회원들과 그룹을 형성하여 큰 행사에 봉사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오늘 이런 자리에서 그 화려한 티 파티를 즐기며 다시 차 공부를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아름답고 화려한 자리는 상대방을 공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했다. 불손한 언행이나 행동이 어울리지 않으니 부드러운 말이 오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행복 에너지는 따끈한 홍차를 마실 때마다 충전 되는 듯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총회를 끝내고 이런 자리를 마련한 회장의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 해 주고 싶었다. 오늘 이 자리에 있었던 회원들은 아마도 돌아가 세상을 환하게 할 새로운 발상이 가정과 이웃에 전파 하지 않을까.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진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딸그락 소리 안 나게 조심스럽게 조반 준비를 했다. 색다른 음식이 아닌 평범한 상이지만 새로 식탁보를 바꾸고 안 쓰던 그릇에 김치며 전을 담아 보았다. 한가운데 티트라이트 버너를 놓고 불을 밝혔다. 뚝배기에 찌개를 올려놓으니 보글거리며 끓었다. 손녀딸이 "할머니 오늘은 누구 생일 인가요" 하고 묻는다. 난 그 말 한마디에 행복 에너지가 솟아올랐다. 이만하면 어제 느꼈던 행복 에너지는 계속 충전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난 이 행복한 분위기 연출에 초점을 두고 어느 자리 어디에서고 반짝거리는 행복을 나누려고 애쓰며 살아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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