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새벽 운동을 다녀와서 아침 식사를 끝내고 느긋하게 커피한잔까지 하고 나니 어느새 열 시가 넘어있었다. TV 채널 구석구석 탐색을 끝낸 리모컨이 긴 소파와 한 몸이 된 남편의 손 안에서 내려오지를 않는다. 쉬는 것도 근무의 연장이라는 자기만의 논리를 들이대며 소파와 일심동체가 되어버린 남편에게 슬쩍 드라이브를 제안하였다. 며칠 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괴산의 공림사가 목적지라고 하자 호기심을 제대로 자극하였는지 함께 하겠다고 한다.

공림사는 지난해 어느 날 가을이 한발 한발 다가오는 계절에 이종 사촌의 안내로 처음 알게 된 곳이었다. 유명한 사찰이라고는 하지만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별 기대 없이 따라나선 곳이었는데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천년 고찰의 편안함과 운치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신라 경문왕 때 자정 선사가 창건하였고 1407년에 자복 사찰로 지정된 곳이라고 한다. 자복 사찰이란 국가의 번영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 명복을 빌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찰 또는 그렇게 된 사찰을 말한다. 희고 큰 바위가 단단한 근육처럼 느껴지는 낙영산이 병풍처럼 서서 절을 품어주는 풍경과 천년의 고목이 인상에 남았던 곳이다.

좋은 곳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픈 마음이 든다. 그 날 경내를 거닐면서 계절이 변할 때마다 함께 할 사람들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 첫 번째가 남편과의 동행이 된 것이다. 공림사를 찾아가는 가로수 길에는 아낌없이 벗은 벚나무들이 즐비해 있었다. 봄에 벚꽃이 흩날리는 화사한 모습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좋았다. 공림사 주차장에 들어서자 처음 내가 느꼈던 것처럼 남편도 탄성을 지르며 튕겨지듯 차에서 내렸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공림사의 유래와 연혁을 꼼꼼하게 읽어가며 간간히 쉬운 한자는 나에게 읽어보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틀리기라도 하면 아주 재미있다는 듯 웃어젖히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종무소 뒤편에 보호수로 지정된 고목 느티나무는 나무의 거대한 밑동이 말해주듯 모진 풍파를 견뎌낸 천년의 나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고된 세월을 이겨내며 마치 관절염으로 비틀어진 관절처럼 울퉁불퉁한 모습이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다. 이종사촌이랑 왔을 때는 느티나무 나뭇잎들의 아우성을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바람에 부서져 날아오는 겨울 낙엽으로 변해 있었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대웅전 문을 열고 부처님께 꾸벅 인사를 드렸다. "부처님 안녕하세요 조용히 절을 좀 돌아보고 가겠습니다." 불자는 아니지만 방문한 곳의 최고 어른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되어서 인사를 드리고 옆에 있는 관음전의 관음보살님께도 인사를 드렸다. 어려서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간 기억이 있다. 비포장 길을 먼지 냄새를 안고 다리가 아플 정도로 걸어서 당도하면 향 냄새가 먼저 나를 맞았다. 어린 나이에 향 냄새가 너무 싫었지만 어머니를 따라왔다는 안도감으로 참을 수 있었다. 호기심에 들여다본 법당 안은 왜 그리 무서웠던지 지금도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이 남아있다.

공림사를 다녀온 그날 밤 꿈을 꾸었다. 새파란 물속에 관음보살님이 나타나 손을 흔들고 사라지자 뒤이어 부처님이 인자로운 눈으로 유유히 물을 즐기시며 손을 들어 인사를 보냈다. 부처님의 손바닥은 정말 크구나 생각하며 꿈을 깨었는데 생생하다. 복권이라도 사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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