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주년
3·1절 100주년
  • 중부매일
  • 승인 2019.03.0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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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온통 거리는 태극기의 물결로 출렁거린다. '3·1절 100주년'을 밎아 중앙공원에 모여 그날의 참상을 돌이켜보며 애국심을 키우고자 함이다.

초등학교 때였다. 영화 유관순 영화를 전교생이 극장에 가서 보았다. 검은 치마에 흰저고리, 갈래머리를 한 유관순 언니는 태극기를 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일본 순사와 군인들이 총칼을 휘두르며 저지를 했지만 아무것도 두렵지 않타는 듯 그들과 맞써 싸웠다. 결국 유관순 언니는 체포되어 참옥한 고문을 받는다. 시뻘건 인두로 지지고, 손톱을 뽑는 잔인한 일본인의 만행을 보며 우리는 흐느껴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 잃은 슬픔을 견디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정의에 불타는 남녀노소는 서울 파고다 공원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나라를 찾기 위하여 태극기로 물들였다.

1919년생인 친정어머니는 일본사람들을 왜놈이라고 불렀다. 일본으로 부터 36년동안 압박과 설음속의 치욕적인 삶을 사신분이다. 농사지은 쌀을 왜놈들은 다 빼앗아 가고 알래미 쌀을 배급 주었으며 콩깨묵 밥을 먹게 했다는 이야기, 색시 공출에 가게될까봐 할아버지는 여자는 이름석자만 알면 된다며 학교를 보내주지 않았다. 딸을 지키기 위해 집에서 부리는 열 살이나 많은 머슴을 데릴사위로 삼은 사건은 정혼만 해놓고 아직어리다는 핑계로 머슴은 그림자처럼 바라만 보다 고향으로 가버려 생이별을 시킨 소설같은 이야기였다.

이제나 저제나 올 때를 기다리다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정도 들기전 지아비는 의용군에 차출됐으며 전사 통지를 받고 미망인이 된 어머니의 운명은 기구했다.

생이별로 헤어진 아버지가 나타나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이야기, 친정으로 돌아와 두 번째 지아비로 맞아야 했던 숙명 같은 삶은 소설속의 소설처럼 기구했다.

어머니는 일부종사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죄인처럼 당신이 낳은 자식한테까지도 철저하게 숨겼다.

하늘나라로 가시고 이모로부터 들은 어머니의 비밀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여인의 힘없는 나라에서의 삶은 파란만장 할 만큼 기구하기만 했다.

6·25 전쟁이 일어나고 두 번째 만난 지아비 마져 전쟁 후 폐 결핵이란 유행병으로 보내고 말았다. 이것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여인이 겪은 슬픈 여자의 일생이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양성 평등시대가 아닌 남아 선호사상에 길 드려진 우리 문화와 벙어리, 귀머거리 3년씩을 살아야 한다는 인내와 고부간의 갈등은 무조건 순종하는 길이었다.

여성의 설자리가 없었던 시대에 밤톨 같은 삼남매를 보듬고 살아온 환경은 철인처럼 살아야만 했던 눈물겨운 이야기다.

어머니께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자란 난 일찍 철이 들었던가, 우리 삼남매는 외출에서 돌아오는 어머니께 칭찬을 듣기 위하여 밥하고 청소하고 도란도란 마주 앉아 해질녘이면 책을 읽곤 했었다.

언제 어디서고 있으나마나한 사람으로는 살지 말라 하셨던 어머니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길렀다. 오늘 3·1절날 어머니께서 들려주셨던 왜놈이야기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우암산 3·1 공원을 둘러보고 새로 생긴 동부 창고 옆 국립현대 미술관 앞을 지난다. 시원스럽게 확 트인 소통의 거리가 청주시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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